[11/14]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2019-11-14
조회수 657

<지혜7,22ㄴ-8,1 / 루카17,20-25>


바리사이들이 기다리는 하느님 나라를 묵상하다가, 올해 대학에 들어간 조카와의 오래된 추억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때는 조카가 이제 막 돈의 가치를 알아가기 시작하던 다섯 살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조카는 가끔 만나는 삼촌에게 몹시도 용돈을 받고 싶어 했는데, 안타깝게도 삼촌은 넉넉하게 용돈을 줄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삼촌은 조카를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쇠로 만든 돈은 종이로 만든 돈보다 더 값진 것이라고, 또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은 금색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10원짜리 동전만으로도 제 조카를 많이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가족들이 도와주지를 않아서 그 행복이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여하튼 여러 종류의 화폐를 늘어놓고 선택하라고 했을 때, 반짝이는 까만 눈으로 금색 동전을 집어 들던 조카가 종종 생각이 나곤 합니다.


우리 눈은 모든 상황에 열려 있는 듯하지만, 사실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고 합니다. 신발을 사러 가는 사람은 온통 사람들의 신발만 보고, 또 안경을 사러 가는 사람은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안경에만 시선이 간다는 것이지요. 제 조카의 경우에는, 쇠로 만든 금색 동전에 온통 정신이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고요. 그러다 보니 바라고 기대하던 것이 아니면, 그것이 눈앞에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정작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사이들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로마서 말씀에 따르면,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로마14,17)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열심히 율법을 지키고 경건하게 살았던 것에 대한 보상으로, 눈부시고 화려한 새 세상을 기대했지요. 그러니 그들 가운데서 이미 시작된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의 하느님 나라를 그들은 도무지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에도 하느님의 나라는 와 있다고 믿습니다. 각 개인의 마음에도, 또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에도 말이지요. 어쩌면 우리가 기대하고 상상하는 만큼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이 아직 충만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완성을 향해서 지금도 자라고 있지요. 나 자신이나 공동체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큰 희망 안에서 기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입니다.


조카가 결국 10원짜리 대신 지폐를 택하게 되었을 때, 몹시 안타깝기도 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녀석이 드디어 더 좋은 것에 눈길을 주게 되었다는 흐뭇함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 내 안에, 우리 공동체 안에 이미 와서 자라고 있는 하느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래서 희망 안에서 많이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지혜의 은총을 이 시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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