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대축일

2026-05-31
조회수 44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우리가 미사를 드리려고 성당에 들어올 때, 그리고 미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

식사를 할 때거나 마칠 때, 어떤 모임을 할 때,

우리는 늘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이름으로, 아멘.” 하면서 모든 일을 시작하고 마칩니다.

실제로 삼위일체는 이렇게 우리 일상 한 가운데 아주 친밀하게 들어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삼위일체 신비를 설명하고 이해하려 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신자들에게 삼위일체는 설명이 필요한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세례”를 받으며 처음으로 고백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부터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하나의 표징이기도 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세례 이후엔 모든 신앙생활의 처음과 끝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죠.

 

여기에서 우리가 성부의 이름으로, 성자의 이름으로,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에는

큰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이름에는 그 사람의 모습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도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우리가 기도하는 그 순간은

성부, 성자, 성령이 지닌 하느님의 존재와 신성에 대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삼위일체”라는 말이 분명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세례 장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마르 1,10-11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세례자요한에게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고,

그때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라는

말이 들렸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하느님이신 성부와, 아들 예수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이 함께 등장하죠.

 

그리고 2코린 13,13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라는 바오로 사도의 축복기도에서

성부, 성자, 성령이 초대 교회에서 어떻게 체험되었는지 간접적으로 알수 있습니다.

즉, 성부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으로, 성자는 우리에게 은총을 주시는 분으로,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친교의 역할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삼위일체 신비는 교리이기도 하지만,

이 신비는 먼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신앙인으로서 삶의 시작이자,

기도 생활과 서로를 축복하고 친교를 나누는 신앙생활 깊숙이 이미 들어와 있습니다.

 

하지만 “한 분이신 하느님이 세 분이시고, 세 분이 같은 하느님이라는,

하나가 셋이고, 셋이 하나”라는 수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신비를

교회는 역사 안에서, 그리고 지금도 여러 신학자들이 설명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여러 신학자들의 설명 중에서

저는 그중에서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설명을 가장 좋아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이 교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삼위일체 신비를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설명하고자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사람을 창조하셨고, 사람이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셨기에,

사람을 관찰함으로써 삼위일체 신비를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사람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여러 가지로 찾아볼 수 있는데,

그 가운데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사랑에 주목했습니다.

성인은 실제로 감정이 일어나는 사랑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는지를 성찰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사랑은 먼저 사랑하는 사람, 사랑받는 사람 그리고 둘 사이를 하나되게 하는 사랑.

이 세 가지가 있어야 진정한 사랑이 됩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을 하게 된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 그리고 너와 나를 사랑으로 묶어주는 우리의 사랑이라는

이 세 가지는 분리되지 않고, 서로 하나로 연결됩니다.

이 사랑의 모양이 어떻다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은 나, 너 그리고 우리의 “사랑”은 경험하는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이처럼 셋이 하나가 되고, 하나가 셋이 되는 신비입니다.

 

이렇게 사랑의 신비로 함께 묶여 있는 것이 삼위일체 신비의 모습입니다.

삼위일체 신비는 결국 우리에게 하느님을 사랑할 때 비로소

하느님을 진정으로 알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여전히 온 마음을 다해 다가오시는 하느님께

오늘 하루 마음을 활짝 열고 그분께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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