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회 형제들과 청양 다락골 성지순례를 갔었을 때의 일입니다.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가에서 형제들과 함께 간단한 기도를 바치고 나서
각자 흩어져 침묵 속에서 개인적으로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참 뒤 다시 무명 순교자묘를 찾았을 때 흥미로운 것을 보았습니다.
한 형제가 순교자묘 옆에 누워있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있는 것을 저도 한참 동안 멀리서 바라봤습니다.
아마도 순교자들의 마음, 그들의 아픔 그리고 그들의 행복을 같이 느끼고 싶었나봅니다.
순교자묘 옆에 누워있는 그 마음이,
순교자들의 삶의 모습과 함께 겹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저에게도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순교자묘 옆에 누워서 순교자들의 마음을 함께 하고자 하는
그 형제의 마음이 좋아보였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기운과 위안의 그늘이 함께 할 때
우리는 행복함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사람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는 매일 그렇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행복한 선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상 삶 안에서 많은 이들이 많은 것을 거부하며 살고 있고,
또 거부당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소중하고, 사람이 있음에 세상이 아름다워야함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여전히 많은 아픔과 슬픔 그리고 죽음이 그늘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또 다른 선물로 이 땅에 하느님을 아는 그리스도인을 준비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죽음마저도 품에 안고 가면서
그것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줄 사람들을 우리 앞에 세워주신 것이죠.
하느님은 그분들이 당신의 마음을 닮은 사람이라고
당신의 십자가를 같이 즐겁게 지고가는 당신의 벗이자 동료라고 하셨습니다.
그 선물을 우리 교회에 주셨고, 우리들이 살아갈 사랑의 공동체에 주셨고,
그리고 세상의 많은 이들을 위해 신앙의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된 순교자들과 증거자들에게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하느님께, 그리고 우리와 세상에 “행복하다.”라는 것이
꼭 자기가 편하게 살고 부유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삶과 죽음을 넘어서고, 주님을 위해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자유를 알 때
진정 행복하다는 것을 조금이나 알게 해 주시니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청양 다락골을 찾은 저희 형제가 순교자들의 삶을 보며 하느님 나라를 생각했듯이,
저는 그 순교자 옆에 누워 마음으로 손잡고 있는 형제를 보며
이 사람이라면 내 삶의 행복을 함께 동반하고 싶다는 생각도 가져봤습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이 있었기에 있는 것이겠죠.
그래서 바오로 사도도 로마 14,9에서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하고 말씀하시는가 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의 삶은 우리에게 결심하고 행동하게 합니다.
그것은 매일의 삶에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하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우리가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신자로서 이 신앙의 삶을 시작할 때 그러한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우리의 선조 순교자들도
자신을 중심으로한 세상에서 걸어나와 더 큰 행복과 희망을 살기 위해
예수님의 세계로 걸어갔습니다.
그것은 매일 마음속에 예수님의 한 말씀을 담고
그 말씀을 통해 옆의 형제자매들과 세상과 예수님을 보며 결심하고 시작하는 것이었죠.
오늘 순교자들이 본 더 큰 희망을 우리들 모두 함께 희망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적어도 그들 무덤 옆에 누워 그분들이 꾸었던 새 세상에 대한 꿈을
우리 작은 마음에서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작은 기억이 우리를 행복하게 살게 하는 힘이 되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주님, 오늘 당신께서 손을 잡아 주는 이를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수도회 형제들과 청양 다락골 성지순례를 갔었을 때의 일입니다.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가에서 형제들과 함께 간단한 기도를 바치고 나서
각자 흩어져 침묵 속에서 개인적으로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참 뒤 다시 무명 순교자묘를 찾았을 때 흥미로운 것을 보았습니다.
한 형제가 순교자묘 옆에 누워있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있는 것을 저도 한참 동안 멀리서 바라봤습니다.
아마도 순교자들의 마음, 그들의 아픔 그리고 그들의 행복을 같이 느끼고 싶었나봅니다.
순교자묘 옆에 누워있는 그 마음이,
순교자들의 삶의 모습과 함께 겹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저에게도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순교자묘 옆에 누워서 순교자들의 마음을 함께 하고자 하는
그 형제의 마음이 좋아보였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기운과 위안의 그늘이 함께 할 때
우리는 행복함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사람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는 매일 그렇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행복한 선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상 삶 안에서 많은 이들이 많은 것을 거부하며 살고 있고,
또 거부당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소중하고, 사람이 있음에 세상이 아름다워야함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여전히 많은 아픔과 슬픔 그리고 죽음이 그늘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또 다른 선물로 이 땅에 하느님을 아는 그리스도인을 준비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죽음마저도 품에 안고 가면서
그것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줄 사람들을 우리 앞에 세워주신 것이죠.
하느님은 그분들이 당신의 마음을 닮은 사람이라고
당신의 십자가를 같이 즐겁게 지고가는 당신의 벗이자 동료라고 하셨습니다.
그 선물을 우리 교회에 주셨고, 우리들이 살아갈 사랑의 공동체에 주셨고,
그리고 세상의 많은 이들을 위해 신앙의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된 순교자들과 증거자들에게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하느님께, 그리고 우리와 세상에 “행복하다.”라는 것이
꼭 자기가 편하게 살고 부유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삶과 죽음을 넘어서고, 주님을 위해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자유를 알 때
진정 행복하다는 것을 조금이나 알게 해 주시니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청양 다락골을 찾은 저희 형제가 순교자들의 삶을 보며 하느님 나라를 생각했듯이,
저는 그 순교자 옆에 누워 마음으로 손잡고 있는 형제를 보며
이 사람이라면 내 삶의 행복을 함께 동반하고 싶다는 생각도 가져봤습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이 있었기에 있는 것이겠죠.
그래서 바오로 사도도 로마 14,9에서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하고 말씀하시는가 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의 삶은 우리에게 결심하고 행동하게 합니다.
그것은 매일의 삶에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하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우리가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신자로서 이 신앙의 삶을 시작할 때 그러한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우리의 선조 순교자들도
자신을 중심으로한 세상에서 걸어나와 더 큰 행복과 희망을 살기 위해
예수님의 세계로 걸어갔습니다.
그것은 매일 마음속에 예수님의 한 말씀을 담고
그 말씀을 통해 옆의 형제자매들과 세상과 예수님을 보며 결심하고 시작하는 것이었죠.
오늘 순교자들이 본 더 큰 희망을 우리들 모두 함께 희망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적어도 그들 무덤 옆에 누워 그분들이 꾸었던 새 세상에 대한 꿈을
우리 작은 마음에서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작은 기억이 우리를 행복하게 살게 하는 힘이 되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주님, 오늘 당신께서 손을 잡아 주는 이를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