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 들어와 얼마 되지 않은 시절 동료 중에 말이 많은 수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부터 저녁 식사 하는 동안에 TV나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들과
연예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신학생들은 귀가 솔깃해서 TV 연예가 중계를 그 수사로부터 들었습니다.
식사 시간이 무겁고 조용하던 것이 그 젊은 형제로 인해 차츰 번잡해졌습니다.
그는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식탁에서 들려주었고,
어느 새 매일 수도원 저녁 식탁에서는 TV 영화 속 연예인과 가수들 이야기로 넘쳐났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수도원의 분위기 무거워 식탁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형제의 연예가 중계도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몇몇 형제들이
매일 식탁에서 오가는 이야기에 대해 제동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날도 식탁에서 신나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 형제에게
수도원 식탁에서 그런 이야기가 매일 오가는 것이 옳지 않다며
수도원에서 하루 중 가장 오래 함께 하는 식사 시간인데 좀 더 건설적인
다시 말해, 수도원다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젊은 수사의 이야기를 탐탁치 않게 여겼던 신부님들이 당연하다는 듯 동의했고,
그 형제는 처참하게 피를 흘리며 식탁에서 입을 담아야 했죠.
그리고나서 수도회 저녁식사 시간이 어떻게 된 줄 아십니까?
형제들의 저녁 식탁은 다시 무거운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간혹 이야기 나오는 것이라고는 신부님들의 신학생들에 대한 지적 사항이나
지시 사항이 나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얼마 뒤 그 형제가 저와 몇몇 형제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은 식탁 분위기가 너무 어둡고 무거울뿐만 아니라,
다들 아무 말도 않고 밥만 먹어서,
공동체가 그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재미있는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라고요.
처음에는 그 이야기가 자신에 대한 변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가끔씩 그의 이야기가 마음에 맴돕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을까 하며 자신의 시간을 들였습니다.
그래서 무겁고 어두운 공동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고,
그런 자신의 노력에 형제들이 반응하는 것에 대해 기뻐했습니다.
안젤름 그륀은 우리 시대가 지닌 위험 중에 하나는
우리가 나르시즘(자기 잘난 맛)에 빠져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 필요한 것에만 골몰하면서 결코 만족을 모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쁨이나 만족이 없는 시간을 산다면 우리들은 일상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느낄 수 없습니다.
결국 그런 공동체에 속해 있다면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고 가치가 없다는
어두운 생각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그것이 가정이든, 수도원이든 마찬가지겠죠.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더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게 충동질합니다.
그 충동질은 자기 욕구 중심, 자기 인정 받기, 자기 만족에 집착하도록 유혹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거나, 도움을 주거나, 나아가 타인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을 오지랖이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분명한 것은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자기 내면의 어둡고 부정적인 생각들을 이겨낼 힘을 줍니다.
그리고 이런 행동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감정과 자세도 바꿔 줍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만들어주면
자신의 내면 안에서도 역시 삶에 대한 기쁨이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그때에는 베드로처럼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며
자신의 희생을 자랑하거나 보상에 대한 욕구를 드러내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충만한 기쁨을 백배나 더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자신에게 있어서도 확실하게 긍정적인 역할을 하여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식탁에서의 그 젊은 수사처럼
자신의 노력이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실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믿는 분명한 것은
그때 그 공동체에서 가장 영혼이 건강한 사람은 그 젊은 수사였다는 것입니다.
서로 상처주지 않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어둠 속에 갇혔던 그 어떤 영혼들보다
더 건강하게 하느님이 주신 생명력과 창조력을 풍부히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 더 건강한 자신과 영혼을 위해 기쁨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보십시오.
“주님, 저로 인해 당신도 기뻐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수도원에 들어와 얼마 되지 않은 시절 동료 중에 말이 많은 수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부터 저녁 식사 하는 동안에 TV나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들과
연예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신학생들은 귀가 솔깃해서 TV 연예가 중계를 그 수사로부터 들었습니다.
식사 시간이 무겁고 조용하던 것이 그 젊은 형제로 인해 차츰 번잡해졌습니다.
그는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식탁에서 들려주었고,
어느 새 매일 수도원 저녁 식탁에서는 TV 영화 속 연예인과 가수들 이야기로 넘쳐났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수도원의 분위기 무거워 식탁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형제의 연예가 중계도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몇몇 형제들이
매일 식탁에서 오가는 이야기에 대해 제동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날도 식탁에서 신나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 형제에게
수도원 식탁에서 그런 이야기가 매일 오가는 것이 옳지 않다며
수도원에서 하루 중 가장 오래 함께 하는 식사 시간인데 좀 더 건설적인
다시 말해, 수도원다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젊은 수사의 이야기를 탐탁치 않게 여겼던 신부님들이 당연하다는 듯 동의했고,
그 형제는 처참하게 피를 흘리며 식탁에서 입을 담아야 했죠.
그리고나서 수도회 저녁식사 시간이 어떻게 된 줄 아십니까?
형제들의 저녁 식탁은 다시 무거운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간혹 이야기 나오는 것이라고는 신부님들의 신학생들에 대한 지적 사항이나
지시 사항이 나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얼마 뒤 그 형제가 저와 몇몇 형제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은 식탁 분위기가 너무 어둡고 무거울뿐만 아니라,
다들 아무 말도 않고 밥만 먹어서,
공동체가 그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재미있는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라고요.
처음에는 그 이야기가 자신에 대한 변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가끔씩 그의 이야기가 마음에 맴돕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을까 하며 자신의 시간을 들였습니다.
그래서 무겁고 어두운 공동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고,
그런 자신의 노력에 형제들이 반응하는 것에 대해 기뻐했습니다.
안젤름 그륀은 우리 시대가 지닌 위험 중에 하나는
우리가 나르시즘(자기 잘난 맛)에 빠져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 필요한 것에만 골몰하면서 결코 만족을 모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쁨이나 만족이 없는 시간을 산다면 우리들은 일상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느낄 수 없습니다.
결국 그런 공동체에 속해 있다면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고 가치가 없다는
어두운 생각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그것이 가정이든, 수도원이든 마찬가지겠죠.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더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게 충동질합니다.
그 충동질은 자기 욕구 중심, 자기 인정 받기, 자기 만족에 집착하도록 유혹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거나, 도움을 주거나, 나아가 타인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을 오지랖이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분명한 것은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자기 내면의 어둡고 부정적인 생각들을 이겨낼 힘을 줍니다.
그리고 이런 행동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감정과 자세도 바꿔 줍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만들어주면
자신의 내면 안에서도 역시 삶에 대한 기쁨이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그때에는 베드로처럼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며
자신의 희생을 자랑하거나 보상에 대한 욕구를 드러내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충만한 기쁨을 백배나 더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자신에게 있어서도 확실하게 긍정적인 역할을 하여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식탁에서의 그 젊은 수사처럼
자신의 노력이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실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믿는 분명한 것은
그때 그 공동체에서 가장 영혼이 건강한 사람은 그 젊은 수사였다는 것입니다.
서로 상처주지 않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어둠 속에 갇혔던 그 어떤 영혼들보다
더 건강하게 하느님이 주신 생명력과 창조력을 풍부히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 더 건강한 자신과 영혼을 위해 기쁨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보십시오.
“주님, 저로 인해 당신도 기뻐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