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기억하며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성모님과
신앙의 십자가 아래 우리를 새로운 믿음의 관계로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자 합니다.
아프리카 오지 카라라는 지방에는 은혜에 보답하는 좋은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마을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받아 고마움을 느끼면
그날 밤 그 집 마당에서 무릎을 꿇고 조용히 머리 숙여 밤새 앉아 있는 것입니다.
혹시 그 밤에 비가 온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꼬박 비를 맞으며 은혜 베푼 사람의 고마움을 가슴에 새긴다고 합니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고 그냥 지내면
그 사람은 마을에서 집단으로 매를 맞거나 쫓겨나고 맙니다.
우리 조상님들도 '은혜는 바위에 새기고 원한은 냇물에 새기라'고 말합니다.
남에게서 받은 고마운 은혜는 마음에 담고,
아픈 상처는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는 것이죠.
그러나 실제로 우리들 안에서는 이런 일이 반대로 일어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원한은 바위에 새기고 은혜는 냇물에 새겨 쉬게 잊어버리는 것이죠.
즉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해 준 고마운 기억은 잊어버리고,
나쁜 기억은 두고두고 오랫동안 간직한다는 것이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면서
세상에서 가장 상처받았을 어머니 마리아에게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사랑하는 아들을 처참하게 죽인 유다인과 로마인들에 대한 원한도
사랑하는 아들을 따라 다니다며 목숨까지 내어 놓겠다더니
나중에는 모두 배신하고 도망친 제자들에 대한 원한까지도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바꾸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미움과 원망과 고통마저도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화해와 새로운 기쁨으로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실제로 마음에 상처를 남겨준 사람에 관한 나쁜 기억을 없애버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도
십자가 아래에서의 고통과 회한만큼은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이고 미움이었으나
마리아는 예수님이 제시하는 새로운 관계의 방법이자 새로운 화해의 방법을 받아들입니다.
죄와 미움과 원한을 인간적 관계의 틀 안에서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
즉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만나는 방법을 성모님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화해와 용서 그리고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관계입니다.
하느님이시니까 할 수 있고, 예수님이니까 할 수 있고,
성모님이니까 할 수 있다고 하면서 "나는 아니야." 하며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서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자신이 미워하는 혹은 미워했던 사람을 생각하며 그들과 있었던 일 중에서
고마웠던 일을 하나 찾아내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고마움으로 하느님께 감사기도 드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주님, 세상에는 참 고마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 올리며 감사드립니다. 아멘."

오늘 우리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기억하며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성모님과
신앙의 십자가 아래 우리를 새로운 믿음의 관계로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자 합니다.
아프리카 오지 카라라는 지방에는 은혜에 보답하는 좋은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마을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받아 고마움을 느끼면
그날 밤 그 집 마당에서 무릎을 꿇고 조용히 머리 숙여 밤새 앉아 있는 것입니다.
혹시 그 밤에 비가 온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꼬박 비를 맞으며 은혜 베푼 사람의 고마움을 가슴에 새긴다고 합니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고 그냥 지내면
그 사람은 마을에서 집단으로 매를 맞거나 쫓겨나고 맙니다.
우리 조상님들도 '은혜는 바위에 새기고 원한은 냇물에 새기라'고 말합니다.
남에게서 받은 고마운 은혜는 마음에 담고,
아픈 상처는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는 것이죠.
그러나 실제로 우리들 안에서는 이런 일이 반대로 일어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원한은 바위에 새기고 은혜는 냇물에 새겨 쉬게 잊어버리는 것이죠.
즉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해 준 고마운 기억은 잊어버리고,
나쁜 기억은 두고두고 오랫동안 간직한다는 것이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면서
세상에서 가장 상처받았을 어머니 마리아에게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사랑하는 아들을 처참하게 죽인 유다인과 로마인들에 대한 원한도
사랑하는 아들을 따라 다니다며 목숨까지 내어 놓겠다더니
나중에는 모두 배신하고 도망친 제자들에 대한 원한까지도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바꾸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미움과 원망과 고통마저도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화해와 새로운 기쁨으로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실제로 마음에 상처를 남겨준 사람에 관한 나쁜 기억을 없애버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도
십자가 아래에서의 고통과 회한만큼은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이고 미움이었으나
마리아는 예수님이 제시하는 새로운 관계의 방법이자 새로운 화해의 방법을 받아들입니다.
죄와 미움과 원한을 인간적 관계의 틀 안에서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
즉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만나는 방법을 성모님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화해와 용서 그리고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관계입니다.
하느님이시니까 할 수 있고, 예수님이니까 할 수 있고,
성모님이니까 할 수 있다고 하면서 "나는 아니야." 하며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서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자신이 미워하는 혹은 미워했던 사람을 생각하며 그들과 있었던 일 중에서
고마웠던 일을 하나 찾아내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고마움으로 하느님께 감사기도 드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주님, 세상에는 참 고마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 올리며 감사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