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2021-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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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4,32-35 / 1요한4,32-35 / 요한20,19-31>

 

제 몸에는 어려서부터 생긴 흉터들이 군데군데 많이 있습니다. 수두를 앓고 남은 흉터도 몇 개 있고, 유리병이 깨지면서 남은 손에 흉터, 또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서 무릎에 생긴 흉터도 있습니다. 그리고 맹장수술을 하면서 남은 수술 흉터 자국도 배에 있지요. 이런 흉터를 볼 때마다 그 순간에 일어났던 일들이 떠오릅니다. 당연히 아프고 괴로웠던 기억들이 많지요.

 

그런데 그런 부정적인 기억 말고도 이 흉터들은 다른 기억을 또 떠올리게 해줍니다. 간지러운 수두 자국 하나하나마다 분홍빛 물약을 발라주시던 어머니 손길도 생각나고, 유리가 깨져 손에서 피가 날 때 나보다 더 걱정스런 얼굴로 바라보시던 할머니 얼굴도 기억납니다. 또 5살 꼬맹이가 맹장 수술 잘 받았다고 당시에는 정말 귀하던 바나나를 넉넉히 사서 병실로 들고 들어오시던 아버지 모습도 떠오릅니다. 제 몸의 흉터들은 그렇게 아프고 괴로웠던 그 순간에 받았던 따뜻한 위로를 기억하게도 해줍니다.

 

그런가하면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며 거기에 담긴 이야기를 기억하게 되는 경우도 많지요. 제왕절개로 태어난 누군가는 어머니 배에 남은 상처를 볼 때마다 잉태하고 낳고 길러주신 어머니 사랑을 기억한다고 합니다. 또, 일터에서 다쳐서 생긴 아버지의 상처는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한 아버지의 노고를 기억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 봉사하다 다치신 유공자분들의 상처는 우리에게 숭고한 희생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요.

 

대개 흉터는 감추고 싶고, 또 가능하면 성형수술로 없애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듯 따뜻함과 사랑을 기억하게 해주는 흉터들은 죽을 때까지, 아니 죽음을 넘어서까지 보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것이 단지 고통의 흔적만이 아니라, 그 고통 가운데서도 결코 멈추지 않았던 따뜻하고 위대한 사랑을 기억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상처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비난과 모욕, 믿었던 제자들의 배신, 그리고 고통스러운 수난과 죽음의 기록이 담겨 있지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렇게 비참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느님 사랑의 흔적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흔적을 볼 때마다 우리의 죄악보다 훨씬 더 큰 하느님 자비의 마음을 다시금 기억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토마스 사도는 바로 그 상처를 만지고 싶어 합니다. 사실, 주님의 상처를 보고 만져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다고 한 토마스 사도는, 의심의 대명사처럼 여겨질 때가 많지요. 하지만 이를 달리 묵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로,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예수님의 상처를 보고, 하느님 자비의 마음을 만지고 싶다는 바람으로 말이지요. 실제로 이러한 토마스 사도의 바람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알게 되는 하느님의 자비가 아니라, 직접 그 상처를 만지고 체험함으로써 더 깊이 알게 되는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고 믿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토마스 사도는 누구보다도 먼저 예수님을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20,28)이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이러한 토마스 사도는 성경에 나올 때마다 ‘쌍둥이’라는 별명과 함께 등장하곤 합니다. 그런데 정작 사도의 쌍둥이가 성경에 등장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요. 이에 대해서 어떤 영성가들은 그 쌍둥이 형제 혹은 자매가 다름 아닌 바로 우리들이라고 묵상합니다. 믿음이 약하고 자주 의심하는 우리들이지만, 쌍둥이 형제 토마스 사도처럼 그분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지요. 남의 말을 듣고서 “그 사람의 주님, 그 사람의 하느님”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 상처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직접 체험하고, 마침내 그분을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부활 제2주일임과 동시에, 하느님의 자비 주일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지정으로 2001년부터 매년 기념하는 이 날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하고, 그분께 의탁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자비의 샘으로부터 은총을 얻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상처는 바로 그 자비의 샘이 흘러나오는 은총의 통로인 것이지요.

 

토마스 사도의 쌍둥이들인 우리들도 주님 상처를 통해서, 죽기까지 우리를 위해 당신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자비를 더 깊이 만나고 체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6,36)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을 함께 기억하며, 우리들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기로 다짐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매순간 주님의 자비를 체험하고, 매순간 자비로운 사람으로 부활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분의 자비를 굳게 믿으며, 우리가 그렇게 변모될 수 있는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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