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2020-10-20
조회수 454

<에페2,12-22 / 루카12,35-38>


어려서 읽었던 글 가운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름난 효자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효자가 얼마나 홀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던지 그의 소문이 멀리 떨어진 다른 고을에까지도 전해졌는데, 이에 그의 효심을 보고 배우려는 청년이 먼 길을 걸어 그 이름난 효자를 찾아오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보게 된 장면은 예상과 많이 달랐다고 합니다. 그 효자가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자 노모는 따뜻하게 덥힌 물로 아들의 발을 손수 씻겨주고, 그리고나서는 구부정한 허리로 손수 밥상을 준비해서 아들에게 가져왔던 것이지요. 의아해하는 청년에게 그 효자는,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해주시는 것을 감사히 받았노라고 답합니다.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동화같은 짧은 이야기인데,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주인과 종의 모습과 겹쳐 보여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사실, 허리가 구부정한 노모가 아들의 발을 씻겨주는 것도 그렇거니와, 주인이 종의 시중을 드는 것도 많이 어색한 장면이지요. 주인은 종을 섬기기 위해 문을 두드리고, 종은 섬김을 받기 위해 그 문을 열어주니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인과 종을 구분하는 것이 더이상 의미가 없음을, 그리고 신분으로 나뉘었던 둘의 경계가 허물어졌음을 발견합니다.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틀이 깨지고, 사랑의 눈으로 보아야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새로운 질서가 열렸다는 것이지요.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이에 누가 섬기고 섬김을 받는 것이 무어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그 사랑이 전해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이 새로운 질서 안에서 어머니도 아들도, 주인도 종도 예외 없이 모두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한편, 이 새로운 질서는 오늘 제1독서의 고백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적개심이라는 장벽이 허물어지고, 계명과 율법이 폐지되며, 마침내 유다인과 이민족의 경계가 사라져 모두가 하느님의 한 가족이 된다고 이야기하지요. 갈라티아서에도 밝힌 바 있듯이,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고 ...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갈라3,28)가 되었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주인이 두드린 문도 어쩌면 물리적인 문이 아니라, '이건 이러해야 한다'고 믿는 완고한 마음의 문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두드림 소리를 듣고 열어야만 새로운 사랑의 질서를 체험할 수 있는 문,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얼마 전 반포한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 이야기한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로 들어서는 문 말입니다. 그 문을 우리가 기꺼이 열고, 누가 종인지 주인인지 구분할 필요도 없는 그런 사랑의 질서로 들어설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그 두드림 소리를 깨어 듣고, 기꺼이 문을 열고, 담대하게 그 경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주님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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