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0]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2020-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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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3,1-9 / 로마8,31ㄴ-39 / 루카9,23-26>


제가 나고 자라서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은 부모님이 계셔서 저를 키워주신 덕분입니다. 물론 근본적으로 생명을 주시고 저를 돌보아 주신 분은 하느님이시지만, 겉모습도 그렇고 품성이나 가치관, 또 좋아하는 것 등등 어느 하나 부모님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아마도 그분들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저도 모르게 배우고 따라 하려 했기 때문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한국천주교회도 근본적으로 성령께서 세우신 교회이지만, 그와 더불어 신앙의 선조들로부터 많은 유산을 전해 받았습니다. 특별히 우리 한국교회는 1784년 신앙공동체가 생겨난 이래, 오랜 기간 박해를 받으면서 일만여 분의 순교자들을 모시게 되었지요. 그리고 오늘은 그 많은 순교자들 가운데, 1984년에 시성되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정하상 바오로를 비롯한 103위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그분들의 순교정신을 현양하는 대축일입니다.


그런데 이렇듯 순교라는 말에 집중하다 보면, 자칫 그분들의 죽음 자체만 강조하게 되는 경향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제가 부모님의 삶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오늘에 이르렀듯이, 우리 교회는 순교자들의 삶 전체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분들의 죽음은 어느 한순간의 영웅적인 결단이라기보다, 복음적으로 살아온 신앙의 삶을 통해 맺혀진 열매라고 보는 것이 옳은 것이겠지요. 다시 말해서,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 선조들이었기에, 마지막까지 그분을 따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순교는 가족이나 자신의 생명을 포기한 어떤 수동적인 사건이 아니라,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 사건, 곧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완성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루카9,25) 만일 우리 선조들이 세상에서 무언가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포기했다면, 아마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거나 해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끝까지 그분을 적극적으로 따랐기에, 그리고 사랑했기에, 마침내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있으셨던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순교정신은 결국 어떻게 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참으로 나다운 모습이 무엇인지, 또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삶은 어떠한 삶인지 식별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럴 때 우리 선조들의 순교 사건은, 오래전 박해시대에나 있었던 나와 무관한 일이 아니라, 지금 내 삶에 영감을 주고, 복음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놀라운 사건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우리 신앙 선조들의 삶은 많은 것을 일깨워줍니다. 죽기까지 신앙을 버릴 수 없다고 하셨던 그분들의 외침은, 물질이나 권력 앞에서 복음적인 가치가 흔들리곤 하는 우리들에게 큰 울림을 주지요. 또, 당시 신분제가 엄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양반과 천민을 가리지 않고 하느님 안에서 형제적 관계를 맺었던 신자들의 모습은, 오늘날 자본의 논리로 사람들을 차별하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박해를 피해 어려운 가운데서도 서로를 돌보았던 당시 신앙공동체는, 우리가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오늘날, 이 땅에서 신앙 때문에 묵숨을 바쳐야 하는 일은 더이상 없을 것입니다. 아니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순교 성인들의 모범을 따라 순교정신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요청되는 바라고 믿습니다.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지요. 부모는 부모로서 자식은 자식으로서, 또 수도자와 일반 신자들은 자기에게 맡겨진 그 모습대로, 그리고 직장인과 학생들도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적인 가치를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자랑스러운 순교자들의 후손답게,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온전히 증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대축일을 맞아, 우리도 그분들처럼 그리스도를 따르고 사랑하기로 다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달릴 길을 다 달려 끝까지 그리스도인의 삶을 기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순교 성인들의 전구를 청하며, 이 시간 필요한 은총을 주님께 간구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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