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5]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2020-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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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테살2,1-3ㄱ.14-17 / 마태23,23-26>


원하는 반찬을 골라 담아 식사하는 형태를 카페테리아 식당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우리 신앙생활에도 카페테리아 신앙이 있다고 합니다. 많은 규정들 가운데 원하는 것만 골라서 지킨다거나, 교회를 통해 주어지는 다양한 은총 가운데서 필요한 것만을 선별적으로 청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사실, 원하는 것만 골라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카페테리아 식당의 최대 장점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음식만 편식하다 보면 영양이 부실해질 수 있듯이, 원하는 것만 골라 하는 식의 신앙생활 역시 건강한 성장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통합적인 성장이 어려워진다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는 무시하는 이들이라고 하십니다. 물론 가진 것의 십 분의 일을 내어놓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의로움과 자비, 신의와 비교할 때, 물질의 십일조는 상대적으로 쉬운 규정입니다. 부단한 노력과 인내 없이 단번에 규정을 지킬 수 있으니 말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작은 벌레들은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는 자들이라고도 하시지요. 아주 작은 것과 큰 것을 비교하시는 이 말씀은, 형제 눈 속에 티는 보면서 자기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합니다.(마태7,3) 그래서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의 작은 실수나 흠은 쉽게 판단하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한 이들을 이야기하신 것으로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다. 남을 판단하기 좋은 규정을 강조했다는 것이지요.


끝으로 예수님께서는 잔과 접시 안에 내용물은 신경 쓰지 않고, 그 겉만 깨끗이 닦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나무라십니다. 탐욕과 방종이 내 안에 있다면 회개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먼저일텐데, 내면의 것은 그대로 두고 남에게 보여지는 외적인 모습에 더 신경을 쓰는 어리석음을 지적하신 것이지요.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규정에 집중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짐작케 합니다.


이처럼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원하는 것을 선택적으로 강조하면서, 결국 물질의 규정과 마음의 규정은 분리되고, 남과 나에 대한 이중잣대가 자라나고, 또 내적인 자세와 외적인 표현 사이에 엇박자가 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것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 한다.”(마태23,23)라고 균형감을 일깨워주신 것이지요. 사실, 통합되지 않은 분리된 모습으로 사는 이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그가 누구라도 불행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카페테리아식 신앙생활을 어느 모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통합적인 성장에서 우리가 멀어질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특별히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우리 마음과 행동과 의지가 통합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을 다짐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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