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사순 제3주일

2021-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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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20,1-17 / 1코린1,22-25 / 요한2,13-25>


스스로를 “온유하고 겸손” (마태11,29)하다고 하신 예수님께서 단단히 화가 나셨습니다. 과격하게도 채찍으로 사람들을 쫓아내시고 돈을 쏟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지요. 인자한 미소를 띤 예수님 얼굴만 생각하던 사람이라면 적잖이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까지 격노하신 것은, 무엇보다 당시 성전 안에서 이루어지던 그릇된 관행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 적어도 한 번은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해야 했는데, 특별히 파스카 축제 때 이러한 순례객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래서 평소 4만 명 정도 사는 예루살렘이, 축제 기간만 되면 사방에서 모여든 순례객들로 12만 명이 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하지요. 이에 따라, 예루살렘 주민들은 손님맞이로 분주할 수밖에 없었고, 성전 안에서는 엄청난 양의 제물이 봉헌되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파스카 축제 때 제물로 봉헌되는 양만 2만 마리 정도가 도살되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잘 상상이 되지도 않습니다.


한편, 제물은 흠없는 것으로만 바쳐야 했기에, 흠없는 양이라는 일종의 인증 또한 필요했는데, 이런 이유로 손수 제물을 준비해 가져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결국, 대부분 성전에서 제물을 사야 했던 것인데, 대목을 맞아 양을 비롯한 제물 가격은 비정상적으로 오르기 일쑤였지요. 그럼에도 평생 단 한 번일 수도 있는 순례를 망치지 않기 위해 순례객들은 그 비용을 다 지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얻어진 엄청난 수익은 상인들과 성전 제사장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습니다.


환전 역시 일정 수수료를 제사장들과 환전상들이 나눠 갖는 식의 구조였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지요.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돈은 우상 숭배이기에 성전 안에서 쓰일 수 없다는 해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환전할 때 환율을 부당하게 올려 폭리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집'이어야 하는 성전은 '장사하는 집', 거대한 시장이 되어서 불의한 방법을 써서라도 높은 이익을 내려는 장사치들의 소굴이 되어 버렸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익의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당시 경제적, 종교적 권력을 장악한 사두가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성전은 본래 목적이 아닌 시장이 되어 버렸고, 성직자들은 그 시장의 장사꾼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며 기도할 때는 분명 하느님께 기도하는 곳, 죄를 용서받고 복을 받는 곳이라고 했었는데, (2역대6,12-42) 어느 순간 그 고유한 모습이 희미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능을 잃어버리고 변질된 성전은 정화되어야만 했던 것이겠지요.


이런 맥락에서, 오늘 예수님께서 정화하시는 성전은 여러가지 묵상으로 우리를 초대해 줍니다. 우리 교회 전체를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하나의 성전으로 보면, 교회가 제 역할을 잘 하고 있는지 다시금 되돌아보게 되지요. 그런가 하면 성전을 본당이나 수도공동체로 생각할 때, 좀 더 구체적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을 얻기도 합니다. 또 각각의 사람들을 성령께서 머무시는 거룩한 성전이라고 보면, 개인의 회개와 연결해서 정화가 필요한 부분들을 성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각 성전이 본래의 목적대로 존재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아마도 공동체별로, 개인별로 다양한 묵상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묵상은 결국 성전 자체이신 분, 그래서 사람들이 허물지만 사흘 안에 부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할 것이라 믿습니다. 얼마나 그분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가라는 기준에 따라 정화하고 새로 세우는 작업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지요.


제1독서에 나오는 십계명은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을 바른길로 이끌고, 진리와 생명에 다다르도록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더 완전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따라 십자가를 통해 부활에 이르는 파스카 여정을 걸어갑니다. 그렇게 우리는 평생에 걸쳐 참된 성전을 완성해갑니다.


사순시기는 이렇듯 정화하고 새롭게 세우는 파스카 여정의 압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 동안 우리 공동체, 혹은 각자의 마음이 본래의 소명을 벗어나 왜곡된 부분이 없는지, 혹시라도 다른 목적을 추구하는 시장터가 되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새롭게 성전을 세울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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