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 대림 제3주일 (자선주일)

2020-12-13
조회수 516

<이사61,1-2ㄱ.10-11 / 1테살5,16-24 / 요한1,6-8.19-28>


수도회에 들어오기 전에 친구 결혼식 사회를 부탁받은 적이 있습니다. 양가 어르신들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참석하는 행사이기에 많이 긴장되기도 했고, 또 일생일대의 큰 전환을 맞는 친구가 더 기쁘고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수없이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제 친구와 신부가 그 자리에서 더 아름답게 빛날 수 있을까 고심도 했었지요. 비록 신랑 신부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지만, 제가 주인공이 아니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혼식이 잘 끝나고 신랑 신부의 행진을 보면서 정말 제 일처럼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사실, 세례자 요한은 많은 이들에게 주인공으로 여겨질 법도 했었지요. 수많은 이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 요르단강으로 몰려들었고, 또 당대 최고의 예언자로서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요한은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자신은 빛이 나야 하는 주인공이 아니라 그 빛을 증언하러 온 사람일 따름이라고, 주인공이 오는 길을 곧게 내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요한복음 3장을 보노라면, 예수님과 교회의 만남을 혼인 잔치에 비유하면서, 자신은 신랑의 친구일 뿐 혼인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기도 합니다.


사실, 오늘 복음 말미에 나오는 ‘신발 끈을 푼다’는 표현도, 당시 이스라엘에서 혼인을 상징하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1,27)는 세례자 요한의 표현 역시, 그의 겸손함을 보여주는 말임과 동시에, 이 혼인 예식을 통한 만남의 주인공이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임을 재차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성탄은 바로 이러한 신랑과 신부의 만남, 곧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건을 기념하고, 또 매 순간 그분과의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는 것이 기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비록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기뻐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어려움들이 존재하고, 특히 코로나19로 기쁘다는 표현 자체가 어색한 요즘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이사61,11), 한순간도 쉼 없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시는 예수님은 우리 마음을 기뻐 뛰놀게 하십니다. 마치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신부인 교회를 어김없이 찾아오시는 그리스도는 그렇게 우리 영혼을 기쁨으로 채워주십니다.


그리고 이때 비로소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언제나 기뻐하십시오.”(1테살5,16)라고 한 말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강압이나 명령이 아닌, 혼인 잔치에 들어가게 되었음을 알라는 초대 말씀으로 알아듣게 된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억지로 웃으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해 다가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그분과의 만남을 희망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대림 제3주일이면서, 동시에 자선 주일이기도 합니다. 일찍이 여러 교부들은 세례, 단식과 더불어, 자선을 통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셨고, 특히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당신에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결코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시며 자선을 강조하신 바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도 가장 작은 이 하나에게 해준 것이 곧 주님께 해 드린 것(마태25,40)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결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자선은 어떤 선택이 아닌, 당연한 의무이자 주님까지도 도울 수 있는 권리인 것입니다.


특별히 대림 시기를 보내는 우리에게 이러한 자선은 두 가지 차원에서 또 이해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첫 번째는 자선을 통해 자기 영혼을 씻음으로써 성탄을 잘 준비하는 것이지요. 필요 이상의 것을 움켜쥐고 있지는 않은지, 내 주변에 어려운 이들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살피고 마음을 정화한다는 의미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자선은 앞서 이야기한 기쁨의 표현이라고도 여겨집니다. 날마다 쉼 없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을 깨달아 기쁨에 찰 때, 그것이 주변 사람들에서 자선의 형태로 드러나게 될 테니 말이지요. 꼭 물질적인 형태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서로를 염려하고 돌보는 마음, 또 조금 손해 보더라도 용서를 건네는 너그러운 마음이 어쩌면 사람들에게 더 큰 따뜻함을 전할 수도 있을테니 말입니다.


계속해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고, 또 사회 안팎에서 여러 근심거리가 우리 마음을 어둡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날마다 성탄이 가까워져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듯이, 어김없이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 희망 안에서 기뻐하고, 기쁨의 표현으로 우리의 너그러운 마음을 많은 이들에게 드러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다가오는 성탄을 기쁘게 잘 맞이할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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