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모든 성인 대축일

2020-11-01
조회수 669

<묵시7,2-4.9-14 / 1요한3,1-3 / 마태5,1-12ㄴ>


몇 해 전, 미국 LA 대교구 주교좌성당인 ‘천사들의 모후 대성당’에 몇 차례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성당은 다양한 민족 출신의 135분 성인과 복자들의 모습을 천에 수놓아 성전 옆면을 장식한 태피스트리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지요. 1세기 성인부터 20세기 성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다양한 인종과 성별, 나이, 직업을 가진 성인들이 모두가 제대를 향해 경건하게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인데, 그 가운데서 미사 참례를 하다 보면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성인들의 무리와 함께 천상 전례에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합니다. 더욱이 그 성인들 가운데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정하상 바오로 성인도 있어서 한국 사람들에게는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 태피스트리를 자세히 보다 보면, 수많은 성인과 복자들 사이에 오늘날의 일상복을 입고 있는 12명의 평범한 사람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린이를 포함한 이 사람들은 다름 아닌 우리 주변의 거룩한 사람들, 곧 이웃집 성인들을 상징합니다. 성인의 호칭을 얻어 공적으로 교회의 공경을 받지는 않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하느님 뜻에 따라 충실히 살았던, 그리고 지금도 살고 있는 이들을 표현함으로써 사실 우리 모두가 성인이 되도록 부름 받았음을 상기시켜주는 것이지요.


아마도 뉴스를 통해 보셨으리라 생각되는데, 얼마 전 10월 10일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탈리아 출신의 카를로 아쿠티스라는 소년을 복자품에 올리신 바 있습니다. 이 소년은 15살에 백혈병으로 사망했는데, 날마다 성체조배와 영성체를 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기꺼이 도와주려 했다고 하지요. 또 컴퓨터에 남다른 재능이 있어서 죽기 전 몇 달 동안은 세계에서 일어난 성체성사의 기적들을 인터넷 웹사이트에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는 벌써 인터넷의 수호성인이라는 호칭을 듣기도 합니다. 살면서 큰 기적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영웅적인 행동으로 유명하지도 않았던 이웃집 소년이 복자가 된 것이지요.


그런가 하면, 2015년에는 소화 데레사 성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시성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때 교황님께서는 이 부부가 사랑과 신앙으로 자녀들을 양육함으로써, 자신들의 소명을 충실히 완수했다고 말씀하셨지요. 이웃집 열심한 신자 부부가 성인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신앙 안에서 자녀를 잘 키우는 것만으로도 성인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아무리 작고 평범한 일이더라도, 큰 사랑으로 그것을 행할 때, 하느님의 눈에는 그것이 더할 나위 없이 값진 덕행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성인이 꼭 나와 완전히 다른 특출난 존재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사제가 되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축복의 말 역시, 성인 사제 되라는 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이 그렇게나 부담스럽고 무겁게 느껴졌었는데, 어느 순간 이 말의 의미가 특출난 존재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제가 받은 성소를 충실히 살아가라는 뜻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큰 사랑으로 묵묵히 해나가라는 격려였던 것이지요. 이것이 비단 사제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외없이 성인이 되도록 부름 받았으니 말이지요. 사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의 가치를 삶으로 드러내고,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을 완성해 가도록 초대받았다는 말입니다.


오늘 제2독서는 이러한 초대에 응답하는 데 필요한 첫 번째 조건을 우리에게 이야기해줍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1요한3,1) 늘 기억하는 것입니다. 과연,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이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분의 자녀라는 사실은, 우리를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고, 그분의 평화 가운데 머물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오늘 복음이 이야기하듯, 온전히 하느님께 의지하기에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 하느님 나라의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오늘 우리는 모든 성인 대축일을 지냅니다. 이날 우리는 전례력 안에서 축일이 정해지지 않은 성인들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우리도 성인들처럼 성덕에로 부름 받았음을 기억합니다. 말하자면 우리 일상 안에서 복음을 충실히 실천함으로써, 참 행복에 이르고, 마침내 성인들과 함께 친교를 나누게 되리라는 희망을 되새기는 날인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이들은 오늘 우리가 지내는 모든 성인 대축일을 희망의 축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희망을 되새기며, 어느 시성식 때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하셨던 말씀을 함께 기억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은 성인들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 모두, 아무도 예외 없이, 성덕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두려워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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