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7]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2021-09-26
조회수 706

<즈카8,1-8 / 루카9,46-50>


흔히 큰 사람, 혹은 위대한 사람이라고 하면 위대한 사상가나 뛰어난 영성의 소유자, 혹은 넓은 마음을 지닌 자비로운 사람 등을 일컬을 때가 많습니다. 남들에게 도움을 주고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데 이바지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이런 위대한 인물들은, 예외도 있겠지만, 대체로 어디서나 환영받고, 또 누구나 가까이하고 싶어하기 마련입니다. 그들이 지닌 지식과 영성, 또 지혜로운 이야기를 통해 내가 도움을 얻을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은 ‘큰’ 사람들이지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작은’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라고 하시며, 어린이와 같은 이들을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이는 내가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운 존재이지요. 뛰어난 지식이나 영성은커녕 생산성도 없는 이들, 그래서 오히려 내가 돌보고 가르쳐주고, 더 나아가 수많은 실수를 감내하고 기다려주어야 하는 이들이 바로 어린이와 같은 이들입니다. 이들은 미천하고 작은 이들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오히려 받아들이기 무거운 ‘큰’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보잘것없는 미천한 이들, 생산성 없이 무능한 이들, 남들에게 받은 상처 탓에 공격적이고 날카로워져 버린 이들. 이들은 과연 ‘작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감내하고 환영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큰’ 사람들, 그래서 받아들이려면 큰 사랑이 필요한 그런 이들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내가 어떤 사람까지 받아들이고 환영하는지를 보면, 결국 내 안에 얼마나 큰 사랑이 있는지를 가늠해볼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듯 큰 사랑으로 환영하는 이들은, 이제 나와 다른 사람마저도 받아들입니다. 내가 속한 무리에 들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그가 나를 반대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연대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경쟁대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반대하지 않는 이는 지지하는 사람”(루카9,50)이라는 포용의 자세를 가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처음 논쟁의 시작은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라는 문제였습니다. 어느 모로 우리도 자유롭지 못한 이 논쟁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통해 두 가지 물음을 던지신다고 여겨집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을 큰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지, 그리고 자신과 참으로 다른 사람마저 큰 포용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지 말이지요. 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 큰 사람의 순위가 매겨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제1독서가 말하듯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백성이고, 또 그분을 닮아 큰 사람이 되도록 초대받았다고 믿습니다. 더 큰 사랑으로 작은 이들을 맞이하고, 보다 큰 여유로 다른 이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가 주님 보시기에 큰 사람으로 날로 변모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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