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2] 연중 제24주일

202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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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50,5-9ㄴ / 야고2,14-18 / 마르8,27-35>


언젠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선거인 추기경단과 함께 한 미사에서 강론 중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 없이 걸어간다면, 십자가 없이 교회를 세운다면, 십자가 없이 그리스도를 고백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아니라 세상의 속인들입니다. 우리가 주교, 신부, 추기경, 교황이기는 하겠지만, 주님의 제자들은 아닐 것입니다.”(2013년 3월 14일)


같은 맥락에서 안티오키아의 주교였던 이냐시오 성인이 하셨던 말씀도 생각납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시리아 지역 교회를 위해 수년간 사목하며, 박해받는 신자들을 위로하고 또 그들의 신앙이 꺼지지 않도록 보살피셨지요. 결국, 성인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죄목으로 체포되고 로마로 끌려가 순교하시게 되는데, 그때 신자들에게 남긴 편지에 이런 고백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서야 나는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수년간을 주교로 사목하시던 성인이, 수난과 죽음의 길을 걸으며 그제야 자신이 주님의 제자라고 느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특별한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며 한결같이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당신을 ‘따르라’는 것이었지요. 단순히 어떤 지식을 습득한다거나, 기술을 익히는 것, 혹은 놀라운 사건들로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가신 길을 따르고 그렇게 함으로써 점차 그분의 인격을 닮아가는 것이 제자가 되는 근본 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느 신학자가 말했듯, 우리가 또 다른 그리스도, 제2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바로 제자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예수님 인격의 여러 면모들을 볼 수 있습니다. 불의함 앞에서 담대하게 하느님의 정의를 선포하기도 하시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놀라운 기적도 일으키시지요. 그런가 하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연민의 마음으로 품으시고, 또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기도 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여러 면모들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덕스러움, 혹은 영성으로 이해됩니다. 그러기에 정의를 선포하고, 기적을 위해 일하며, 사람들을 사랑하고, 하느님과 일치함으로써 우리는 예수님을 따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이 면모들이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것만으로 완전히 예수님을 따른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그분 삶의 절정이라고 고백하는 우리들에게, 십자가 없는 따름은 어느 모로 알맹이 없는 빈말처럼 느껴지니 말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분의 어느 한 면모만을 택하거나, 어떤 시기의 예수님을 집중해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분 삶 전체를 나의 삶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면서도, 동시에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다른 면모들은 다 따름직했지만, 십자가만은 피하고 싶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마르8,33)라고 하시지요.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당신을 떠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라는 의미, 곧 직역하면 “내 뒤로 가라”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제자의 자세는 스승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스승을 따르는 것임을 강조하신 것이지요. 그것도 부분적인 따름이 아닌 온전한 따름으로 말입니다.


복음의 전반부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르8,29)라고 물어보십니다. 그런데 이 물음을 묵상하다 보면, 반대로 예수님께 물어보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 주님께서는 저를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말이지요. 바라건대, 당신을 따르는 ‘제자’라고 답해 주시면 좋겠는데, 어쩌면 그와 다른 답을 곤혹스럽게 들어야 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부끄러운 내 민낯을 보게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떤 답이 되었건, 그 마지막 말씀은 어김없이 다시 또 “나를 따라라”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초대받은 우리들이 그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온전히 따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그분의 인성을 닮아감으로써 마침내 그분의 신성에 우리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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