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8,2-4ㄱ.5-6.8-10 / 1코린12,12-30 / 루카1,1-4; 4,14-21>
"라떼는..."이라고 자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소위 '꼰대'라고 많이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기보다는 과거에 매여있는 사람들, 더 나아가 그 예전 가치관을 남들에게까지 강요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과거의 경험들이 지혜로 녹아들어 보다 넓은 시야를 열어주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그 사람이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폐쇄적이라면, 그래서 한사코 예전 방식을 고수하려 한다면, 함께 미래를 꿈꾸고 일하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반면에 늘 미래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컨대, 다음 달부터는 어떻게 하겠다라던가, 학교를 졸업하거나 취업을 하면 무슨 일을 하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미래를 계획하면서 이로부터 동기 부여를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은 먼 미래만을 바라보며 사는 이들과는 지금 함께 손발을 맞춰 일하기 쉽지 않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바빌론으로 끌려가 귀양살이를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에즈라 사제가 읽어주는 율법을 듣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율법서의 내용을 들으면서 하느님의 법을 저버리고 살았던 자신들의 죄를 통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볼 수 있지요. 또 죄의 결과라 할 수 있는 긴 유배생활의 고통이 떠올라서 더 서글퍼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에 에즈라 사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에 매여있지 않고 오늘을 살도록 초대합니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라고 재차 강조하면서, 현재를 기쁘게 경축하자고 이야기합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께서도 현재를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지고, 잡혀간 이들이 해방되고, 눈먼 이들이 보고, 억압받는 이들이 해방되는 은혜로운 해"가 오늘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신 것이지요. 아마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이 이사야서의 말씀을 미래에 일어날 일로 믿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로마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메시아를 통해 선택받은 민족의 위용이 온 세상에 드러나리라고 고대하고 있었겠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늘'을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것임을 강조하셨던 것이지요.
이런 맥락에서 특별히 은혜로운 해, 곧 희년을 선포하신 것도 눈여겨보게 됩니다. 레위기 말씀에 따르면, 이스라엘 민족은 안식년을 일곱 번 보내고 50년마다 본래의 소유지를 돌려받는 희년을 지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희년에는 유다인 노예가 해방되고, 부채도 탕감된다는 규정이 있었지요.(레위25,8-10) 말 그대로, 희년은 땅을 잃고 희망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본래 가지고 있던 권리를 되찾아주는 기쁨과 희망의 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이러한 희년 규정이 실제로 실행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모두가 권리를 되찾고 자유롭게 해방되는 기쁨을 누리기에는, 사람들의 이기심이 너무 컸던 탓이었겠지요. 그래서 희년의 정신은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모두가 어느 모로 동의는 하지만, 지금 현재가 아니라, 다가올 어느 미래에 가서야 가능해질 이상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손에 닿지 않는 미래로만 여겨지던 희년을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자리로 끌어들이십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지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이 선포되며, 눈먼 이들이 다시 보고 억압받는 이들이 해방되는 그 기쁨과 희망은 바로 지금 우리 가운데 일어나야 한다고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공생활 가운데 그분은 구체적으로 그 일을 하셨던 것이지요.
오늘 제2독서는 우리 교회가 바로 그 그리스도의 몸이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지체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지체들은 예수님께서 삶으로 선포하신 희년의 정신을, 각자가 받은 은사에 따라 고유하고도 다양하게 선포하도록 요청받습니다. 그렇게 교회는 모든 이들이 본래의 권리를 되찾고 자유롭게 해방되는 희년을 바로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실현해가는 공동체라는 것이지요.
어떤 이들은 오늘 회당에서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마치 그분께서 당신의 비전을 선언하시는 것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선언은 그분 몸의 지체들인 우리들에게 그 비전에 동참해 달라는 초대 말씀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들인 우리가 각자의 고유한 역할을 통해 그 초대에 충실히 응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그분과 일하며 희년을 실현해가는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느헤8,2-4ㄱ.5-6.8-10 / 1코린12,12-30 / 루카1,1-4; 4,14-21>
"라떼는..."이라고 자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소위 '꼰대'라고 많이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기보다는 과거에 매여있는 사람들, 더 나아가 그 예전 가치관을 남들에게까지 강요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과거의 경험들이 지혜로 녹아들어 보다 넓은 시야를 열어주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그 사람이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폐쇄적이라면, 그래서 한사코 예전 방식을 고수하려 한다면, 함께 미래를 꿈꾸고 일하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반면에 늘 미래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컨대, 다음 달부터는 어떻게 하겠다라던가, 학교를 졸업하거나 취업을 하면 무슨 일을 하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미래를 계획하면서 이로부터 동기 부여를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은 먼 미래만을 바라보며 사는 이들과는 지금 함께 손발을 맞춰 일하기 쉽지 않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바빌론으로 끌려가 귀양살이를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에즈라 사제가 읽어주는 율법을 듣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율법서의 내용을 들으면서 하느님의 법을 저버리고 살았던 자신들의 죄를 통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볼 수 있지요. 또 죄의 결과라 할 수 있는 긴 유배생활의 고통이 떠올라서 더 서글퍼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에 에즈라 사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에 매여있지 않고 오늘을 살도록 초대합니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라고 재차 강조하면서, 현재를 기쁘게 경축하자고 이야기합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께서도 현재를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지고, 잡혀간 이들이 해방되고, 눈먼 이들이 보고, 억압받는 이들이 해방되는 은혜로운 해"가 오늘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신 것이지요. 아마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이 이사야서의 말씀을 미래에 일어날 일로 믿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로마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메시아를 통해 선택받은 민족의 위용이 온 세상에 드러나리라고 고대하고 있었겠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늘'을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것임을 강조하셨던 것이지요.
이런 맥락에서 특별히 은혜로운 해, 곧 희년을 선포하신 것도 눈여겨보게 됩니다. 레위기 말씀에 따르면, 이스라엘 민족은 안식년을 일곱 번 보내고 50년마다 본래의 소유지를 돌려받는 희년을 지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희년에는 유다인 노예가 해방되고, 부채도 탕감된다는 규정이 있었지요.(레위25,8-10) 말 그대로, 희년은 땅을 잃고 희망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본래 가지고 있던 권리를 되찾아주는 기쁨과 희망의 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이러한 희년 규정이 실제로 실행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모두가 권리를 되찾고 자유롭게 해방되는 기쁨을 누리기에는, 사람들의 이기심이 너무 컸던 탓이었겠지요. 그래서 희년의 정신은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모두가 어느 모로 동의는 하지만, 지금 현재가 아니라, 다가올 어느 미래에 가서야 가능해질 이상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손에 닿지 않는 미래로만 여겨지던 희년을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자리로 끌어들이십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지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이 선포되며, 눈먼 이들이 다시 보고 억압받는 이들이 해방되는 그 기쁨과 희망은 바로 지금 우리 가운데 일어나야 한다고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공생활 가운데 그분은 구체적으로 그 일을 하셨던 것이지요.
오늘 제2독서는 우리 교회가 바로 그 그리스도의 몸이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지체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지체들은 예수님께서 삶으로 선포하신 희년의 정신을, 각자가 받은 은사에 따라 고유하고도 다양하게 선포하도록 요청받습니다. 그렇게 교회는 모든 이들이 본래의 권리를 되찾고 자유롭게 해방되는 희년을 바로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실현해가는 공동체라는 것이지요.
어떤 이들은 오늘 회당에서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마치 그분께서 당신의 비전을 선언하시는 것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선언은 그분 몸의 지체들인 우리들에게 그 비전에 동참해 달라는 초대 말씀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들인 우리가 각자의 고유한 역할을 통해 그 초대에 충실히 응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그분과 일하며 희년을 실현해가는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