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앙고백 중 하나인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 고백하는 토마스 사도를 만납니다.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주님을 뵌 다른 제자들의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잃은 상실감과 유다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문을 잠그고 숨어 있었는데, 토마스 그 자리에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토마스는 라자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 위험을 무릎쓰고 가시려고 할 때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요한 11,16) 하고 소리쳤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토마스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도 그 곁에 없었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도 그 곁에 없었습니다.
생각으로는 주님과 함께 죽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막상 주님과 함께 하려고 하니 두렵고 무섭기만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토마스에게도 당신의 부활을 만나게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방에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두 손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의 옆구리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그것은 못 자국이고 창이 찔린 자국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상처 자국을 말하지 않습니다.
토마스가 그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 보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아야한다고 믿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구멍입니다. 곧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어 주시는 공간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은 너무나 감동적이고 극적이고 놀랍습니다.
땅도 없고 자유도 없는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평화의 땅을 주시며
구원을 약속하시고,
무섭고 두려워 마음의 문마저 꼭꼭 잠가둔 사람들에게는
당신의 손가락과 옆구리에 상처를 내서라도 사람들을 위로하시며 구원하십니다.
다시 말해 주님은 우리가 아파할 때 우리더러 마음을 비우라고 하시기 전에 먼저,
당신의 마음과 시간과 아픔마저 비워서라도 우리에게 와서는, 너도 와서 쉬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사랑이고 구원이었습니다.
그 사랑을 보고 느낀 토마스는 단 한마디로 자신을 주님께 봉헌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토마스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뒤 밖을 서성거렸습니다.
마음을 잡지 못해서, 예수님의 시신을 찾아보려고, 사람들의 동태를 살피려고
또는 빨리 죽은 예수님을 잊고 다른 일이라도 찾아보려고 했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 중 몇몇 신자들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주님 밖에서 찾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기도해도 잘 안 되는 것 같고, 신자로서 의무를 지키며 사는 것도 어렵고,
사람들의 눈도 의식되고, 신자가 되도 뭐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은 불안감에
늘 주님 문 밖에서 서성이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토마스처럼 밖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에게 오늘 복음은 말합니다.
예수님의 두 손과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십시오.
다시 말해 예수님처럼 먼저 사랑을 찾고 위로를 찾고 평화를 찾는 이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상처난 마음마저도 보여주라고 하십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아파도 품어주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는 참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그렇게 사랑에 굶주리고
마음을 위로하는 따스한 말 한 마디가 그리워 돌아다니는 토마스와 우리에게
당신의 아픈 상처마저 내어 주십니다.
그 하느님을 따라 우리도 이웃에게 마음을 열 때 주님을 만나 뵈올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앙고백 중 하나인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 고백하는 토마스 사도를 만납니다.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주님을 뵌 다른 제자들의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잃은 상실감과 유다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문을 잠그고 숨어 있었는데, 토마스 그 자리에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토마스는 라자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 위험을 무릎쓰고 가시려고 할 때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요한 11,16) 하고 소리쳤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토마스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도 그 곁에 없었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도 그 곁에 없었습니다.
생각으로는 주님과 함께 죽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막상 주님과 함께 하려고 하니 두렵고 무섭기만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토마스에게도 당신의 부활을 만나게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방에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두 손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의 옆구리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그것은 못 자국이고 창이 찔린 자국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상처 자국을 말하지 않습니다.
토마스가 그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 보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아야한다고 믿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구멍입니다. 곧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어 주시는 공간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은 너무나 감동적이고 극적이고 놀랍습니다.
땅도 없고 자유도 없는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평화의 땅을 주시며
구원을 약속하시고,
무섭고 두려워 마음의 문마저 꼭꼭 잠가둔 사람들에게는
당신의 손가락과 옆구리에 상처를 내서라도 사람들을 위로하시며 구원하십니다.
다시 말해 주님은 우리가 아파할 때 우리더러 마음을 비우라고 하시기 전에 먼저,
당신의 마음과 시간과 아픔마저 비워서라도 우리에게 와서는, 너도 와서 쉬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사랑이고 구원이었습니다.
그 사랑을 보고 느낀 토마스는 단 한마디로 자신을 주님께 봉헌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토마스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뒤 밖을 서성거렸습니다.
마음을 잡지 못해서, 예수님의 시신을 찾아보려고, 사람들의 동태를 살피려고
또는 빨리 죽은 예수님을 잊고 다른 일이라도 찾아보려고 했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 중 몇몇 신자들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주님 밖에서 찾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기도해도 잘 안 되는 것 같고, 신자로서 의무를 지키며 사는 것도 어렵고,
사람들의 눈도 의식되고, 신자가 되도 뭐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은 불안감에
늘 주님 문 밖에서 서성이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토마스처럼 밖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에게 오늘 복음은 말합니다.
예수님의 두 손과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십시오.
다시 말해 예수님처럼 먼저 사랑을 찾고 위로를 찾고 평화를 찾는 이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상처난 마음마저도 보여주라고 하십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아파도 품어주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는 참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그렇게 사랑에 굶주리고
마음을 위로하는 따스한 말 한 마디가 그리워 돌아다니는 토마스와 우리에게
당신의 아픈 상처마저 내어 주십니다.
그 하느님을 따라 우리도 이웃에게 마음을 열 때 주님을 만나 뵈올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