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동안 유다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하느님에 관한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권위 있는 가르침처럼 들렸고,
때로는 그분의 놀라운 표징들을 직접 눈으로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분이 정말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인 것 같기도 하였지만 확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무리 중의 한두 사람이 돌을 들자 자신들도 돌을 들고 예수님을 치려고 합니다.
오늘 복음을 읽는 중에 미션의 마지막 장면이 함께 떠올랐습니다.
영화 미션을 본 것이 벌써 20년을 넘었지만 여전히 몇몇 장면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포르투갈 군대가 과라니 부족의 공격을 차례로 분쇄하고 마을에 들어왔을 때,
가브리엘 신부가 성체를 모신 성광을 앞세우고
아이들과 노인과 여인들과 함께 성가를 부르며 총칼 앞에 섰습니다.
그 순간 병사들은 잠시 머뭇거리고 혼란에 빠져들었습니다.
성체를 모시고 성가를 부르며 자신 앞에 선 신앙의 행렬을 향해
차마 총을 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나 잠시 뒤 장교들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은 총을 쏠 수밖에 없었고
가브리엘 신부와 어린 아이들과 노인과 여인들까지 모두 죽이고 맙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느꼈을 때 많은 것이 변화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좋은 말을 들었기에 자신도 이제 변화될 것이라 기대하죠.
그러나 여전히 세상이 달라지지도 않고,
여전히 사람들은 예전 그대로이고, 건물도 그대로 있고, 해와 달도 그대로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또한 그대로 있습니다.
예전처럼 여전히 변덕스럽고, 귀찮은 일이 있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쉽지 짜증을 내며,
때로는 신자다운 마음으로 잘 용서하고 이해하다가도
미운 사람을 보면 화가 나서 끓고 맙니다.
유다인들이 그러했고, 영화 속의 포르투갈 병사들이 그러했듯이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갑자기 해방되고,
포르투갈 병사들이 과라니족의 학살을 멈추고 같이 성체 행렬을 따르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해서 우리 자신이 갑자기 천사가 되지도 않고,
자기 주변의 사물이 다 변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셨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달리하라고 요청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 만지고 있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바라보는 마음과 영혼은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손과 마음으로 든 돌을 내려놓아야 하고,
손과 마음으로 든 총과 칼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삶의 의미이자 생명입니다.
보고 듣는 것만이 아닌 본 것을 들은 것을 자신이 살기 시작할 때
새로운 삶의 의미와 생명이 진정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 오늘 제가 다른 이에게 들었던 돌이 당신을 향해 던진 돌이 됨을 알게 하시고, 이 마음의 돌을 내려놓게 하소서. 아멘.”

오랜 동안 유다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하느님에 관한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권위 있는 가르침처럼 들렸고,
때로는 그분의 놀라운 표징들을 직접 눈으로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분이 정말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인 것 같기도 하였지만 확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무리 중의 한두 사람이 돌을 들자 자신들도 돌을 들고 예수님을 치려고 합니다.
오늘 복음을 읽는 중에 미션의 마지막 장면이 함께 떠올랐습니다.
영화 미션을 본 것이 벌써 20년을 넘었지만 여전히 몇몇 장면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포르투갈 군대가 과라니 부족의 공격을 차례로 분쇄하고 마을에 들어왔을 때,
가브리엘 신부가 성체를 모신 성광을 앞세우고
아이들과 노인과 여인들과 함께 성가를 부르며 총칼 앞에 섰습니다.
그 순간 병사들은 잠시 머뭇거리고 혼란에 빠져들었습니다.
성체를 모시고 성가를 부르며 자신 앞에 선 신앙의 행렬을 향해
차마 총을 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나 잠시 뒤 장교들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은 총을 쏠 수밖에 없었고
가브리엘 신부와 어린 아이들과 노인과 여인들까지 모두 죽이고 맙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느꼈을 때 많은 것이 변화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좋은 말을 들었기에 자신도 이제 변화될 것이라 기대하죠.
그러나 여전히 세상이 달라지지도 않고,
여전히 사람들은 예전 그대로이고, 건물도 그대로 있고, 해와 달도 그대로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또한 그대로 있습니다.
예전처럼 여전히 변덕스럽고, 귀찮은 일이 있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쉽지 짜증을 내며,
때로는 신자다운 마음으로 잘 용서하고 이해하다가도
미운 사람을 보면 화가 나서 끓고 맙니다.
유다인들이 그러했고, 영화 속의 포르투갈 병사들이 그러했듯이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갑자기 해방되고,
포르투갈 병사들이 과라니족의 학살을 멈추고 같이 성체 행렬을 따르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해서 우리 자신이 갑자기 천사가 되지도 않고,
자기 주변의 사물이 다 변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셨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달리하라고 요청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 만지고 있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바라보는 마음과 영혼은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손과 마음으로 든 돌을 내려놓아야 하고,
손과 마음으로 든 총과 칼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삶의 의미이자 생명입니다.
보고 듣는 것만이 아닌 본 것을 들은 것을 자신이 살기 시작할 때
새로운 삶의 의미와 생명이 진정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 오늘 제가 다른 이에게 들었던 돌이 당신을 향해 던진 돌이 됨을 알게 하시고, 이 마음의 돌을 내려놓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