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느님을 따르는 신앙인들도 또한 어려운 시간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 애쓰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려 애씀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상처로 휘청거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 일까요?
“상처”가 무엇인가에 대해 말로 정의 내리기 어렵다 하더라도,
우리는 사실 상처가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육체적인 상처는 몸을 먼저 아프게 하고,
정신적인 상처는 마음을 먼저 아프게 하며,
영적인 상처는 우리에게 믿음과 자유를 뒤흔들어 놓습니다.
정말 살아가면서 상처를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덕분에 모두, 완전히 치유되었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처는 계속해서 우리를 위협하고,
어쩌다 상처가 치유되었다 해도 상처의 기억까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마음 안에 새겨진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많은 신자들이 상처를 입게 되었을 때,
하느님의 자비와 위로가 가장 필요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때, 상처 받아 힘들 때,
우리들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왜, 하느님은 나를 이렇게 아프게 하는 거야!”
“왜, 하느님은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고, 절망에 빠지게 하는 거야!” 하며
하느님을 원망하고 도와주시지 않고, 해결해주시지 않은 하느님을 원망하며
하느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하느님을 떠난다고 해서 상처가 치유되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상처로 고통을 받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비교하면 어떤 것이 더 나을까요?
많은 경우 죽는 것보다는 고통 받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고통이 죽음보다 더 괴롭고 힘들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상처로 인한 고통이나 죽음은 사실 우리에게 두렵고 힘든, 피하고 싶은 현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상처로부터 도망치고, 죽음으로부터 도망칩니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도 어느 것도 그냥 사라지거나 치유되는 것은 없습니다.
죄와 죽음의 상처로부터 부활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오늘,
죽음에서 라자로를 불러내시는 말씀을 통해
“죄와 죽음과 상처”를 마주하는 하느님의 방식, 즉 영적 기술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분은 죄로 죽은 우리 마음에 대해서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43)라고 말씀하시고,
상처로 둘러싸인 우리와 사람들에게는 “돌을 치워라.”(39)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게 무슨 의미일까요?
흔히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서 또는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으면
그 상처가 내 탓인지, 남 탓인지 따집니다.
그리고 누구 탓으로 상처받았다는 생각에 이르면
그때부터 더 깊은 분노의 수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상처받은 영혼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상처를 어둠 속에, 무덤 속에, 죽음 속에 두지 말고 밖으로 “데리고 나와라.”
“나 상처받아 아프다.”고 말하고, “힘들다”고 먼저 자신에게 말하고,
자신과 사람들 안에서 위로와 기도를 받을 수 있도록
빛으로 비추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상처 입은 감정이 겪는 분노와 화와 슬픔의 감정들을
“용서한다.”라는 가면을 씌워서는 안됩니다.
용서하지 못했으면서 용서했다고 자꾸 세뇌를 시킨다고
마음에서 치유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상처를 치유해야 용서할 힘도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의 상처를 마주해야 합니다.
상처를 마주하며 위로해주고, 하느님의 빛으로 비추며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돌을 치워야”합니다.
상처 때문에 자신에게서 도망치고,
사람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하는 두려움의 돌을 치워야 합니다.
상처를 무기 삼아 다른 이를 공격하고자 마음의 돌을 치워야 하며,
근본적으로는 상처는 피해야 할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치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상처는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치유의 과정을 통해 하느님의 더 큰 은총을 체험하게 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죄와 죽음과 상처로부터 고통받으면 어찌하라 하십니까?
그분은 우리가 하느님을 따라 사는 신앙의 여정에서 우리가 상처를 받게 된다면
자신의 상처를 숨기지 말고, 빛으로 가지고 나와 마주하라 하십니다.
또한 너와 나 사이를 막고, 너와 사람들 사이를 막는 “돌을 치워라.”라고 하십니다.
부활을 준비하며 이 한 주간,
죄와 죽음과 상처로부터 나와 주님께 걸어갈 수 있는 용기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청합니다. 아멘.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느님을 따르는 신앙인들도 또한 어려운 시간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 애쓰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려 애씀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상처로 휘청거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 일까요?
“상처”가 무엇인가에 대해 말로 정의 내리기 어렵다 하더라도,
우리는 사실 상처가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육체적인 상처는 몸을 먼저 아프게 하고,
정신적인 상처는 마음을 먼저 아프게 하며,
영적인 상처는 우리에게 믿음과 자유를 뒤흔들어 놓습니다.
정말 살아가면서 상처를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덕분에 모두, 완전히 치유되었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처는 계속해서 우리를 위협하고,
어쩌다 상처가 치유되었다 해도 상처의 기억까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마음 안에 새겨진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많은 신자들이 상처를 입게 되었을 때,
하느님의 자비와 위로가 가장 필요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때, 상처 받아 힘들 때,
우리들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왜, 하느님은 나를 이렇게 아프게 하는 거야!”
“왜, 하느님은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고, 절망에 빠지게 하는 거야!” 하며
하느님을 원망하고 도와주시지 않고, 해결해주시지 않은 하느님을 원망하며
하느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하느님을 떠난다고 해서 상처가 치유되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상처로 고통을 받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비교하면 어떤 것이 더 나을까요?
많은 경우 죽는 것보다는 고통 받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고통이 죽음보다 더 괴롭고 힘들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상처로 인한 고통이나 죽음은 사실 우리에게 두렵고 힘든, 피하고 싶은 현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상처로부터 도망치고, 죽음으로부터 도망칩니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도 어느 것도 그냥 사라지거나 치유되는 것은 없습니다.
죄와 죽음의 상처로부터 부활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오늘,
죽음에서 라자로를 불러내시는 말씀을 통해
“죄와 죽음과 상처”를 마주하는 하느님의 방식, 즉 영적 기술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분은 죄로 죽은 우리 마음에 대해서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43)라고 말씀하시고,
상처로 둘러싸인 우리와 사람들에게는 “돌을 치워라.”(39)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게 무슨 의미일까요?
흔히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서 또는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으면
그 상처가 내 탓인지, 남 탓인지 따집니다.
그리고 누구 탓으로 상처받았다는 생각에 이르면
그때부터 더 깊은 분노의 수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상처받은 영혼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상처를 어둠 속에, 무덤 속에, 죽음 속에 두지 말고 밖으로 “데리고 나와라.”
“나 상처받아 아프다.”고 말하고, “힘들다”고 먼저 자신에게 말하고,
자신과 사람들 안에서 위로와 기도를 받을 수 있도록
빛으로 비추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상처 입은 감정이 겪는 분노와 화와 슬픔의 감정들을
“용서한다.”라는 가면을 씌워서는 안됩니다.
용서하지 못했으면서 용서했다고 자꾸 세뇌를 시킨다고
마음에서 치유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상처를 치유해야 용서할 힘도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의 상처를 마주해야 합니다.
상처를 마주하며 위로해주고, 하느님의 빛으로 비추며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돌을 치워야”합니다.
상처 때문에 자신에게서 도망치고,
사람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하는 두려움의 돌을 치워야 합니다.
상처를 무기 삼아 다른 이를 공격하고자 마음의 돌을 치워야 하며,
근본적으로는 상처는 피해야 할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치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상처는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치유의 과정을 통해 하느님의 더 큰 은총을 체험하게 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죄와 죽음과 상처로부터 고통받으면 어찌하라 하십니까?
그분은 우리가 하느님을 따라 사는 신앙의 여정에서 우리가 상처를 받게 된다면
자신의 상처를 숨기지 말고, 빛으로 가지고 나와 마주하라 하십니다.
또한 너와 나 사이를 막고, 너와 사람들 사이를 막는 “돌을 치워라.”라고 하십니다.
부활을 준비하며 이 한 주간,
죄와 죽음과 상처로부터 나와 주님께 걸어갈 수 있는 용기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청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