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마태 5,46) 라고 말씀하시며,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계신데 이는 어떤 의미일까요?
사실 우리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좋습니다.
그는 나를 이해해주고, 보호해주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필요하고 세상을 사는 힘이 됩니다.
그렇게 사랑해주는 사람끼리 모여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공동체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을 그런 사랑이 부족한 상태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건강한 거리와 건강한 친밀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 관계를 맺음에 있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올바른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없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안에 건강한 거리가 없으면
그 사랑은 자유와 자율이 아니 속박이나 의존의 경향을 가지게 됩니다.
건강한 거리를 가지는 것은 서로를 자유롭게 합니다.
건강한 거리는 서로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고 서로의 존재와 행위에 대해 존중해줍니다.
그러나 건강한 거리없이 밀착하게 되면 애착의 경향이 드러나게 되고,
상대를 소유하고픈 욕망을 가져와 그의 자유와 존재를 속박하게 됩니다.
건강한 거리는 공동체 구성원 각자의 자율성이 보장되기에
공동체 구성원이 다른 공동체에 대한 지향을 가져도 수용할 여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거리가 없는 공동체는
다른 공동체의 지향하는 것이 자기 공동체에 대한 공격이자 침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거리가 없는 공동체는 그래서 결국 자기들만의 세계만을 고집하게 되고,
자기 세계 안에 있으면 동료이고, 자기 세계 밖에 있는 것은 모두 적으로 생각합니다.
건강한 거리가 자유와 자율성이 만드는 건강한 관계와 공동체의 확장성을 말한다면,
건강한 친밀함은 참된 생명력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어떤 존재와 친밀하게 되면
우리는 그 상대와 기쁨과 행복과 같은 영적 가치를 나누게 됩니다.
그런데 건강하지 못한 친밀함을 가질 때 우리는
자기 도취(중독)와 착취의 현상을 접하게 됩니다.
그 친밀함은 생명을 살리는 방향성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생명을 갉아먹는 치명적인 독이 되고 맙니다.
그리하여 자신만의 기쁨에 도취되어 쾌락에서 빠져 중독자가 되거나,
자신만의 기쁨을 얻기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고 그의 생명을 착취합니다.
그러나 건강한 친밀함은
서로가 지닌 기쁨의 본질을 알아보고 그 본질을 살려주기 위해 서로 노력합니다.
자신도 기쁘게 살고, 상대도 기쁘게 사는 방법을 서로 알고 성장시키는 것이죠.
그러한 건강한 친밀함이 있는 공동체는
다른 공동체에게 더 큰 기쁨과 생명이 있음을 알게 합니다.
그렇게 건강한 거리와 건강한 친밀함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아버지처럼 완전해지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세상 창조 때부터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며
우리와 건강한 거리를 가지셨고,
우리를 창조하신 처음부터 그리고 마침내 때가 차자 예수님을 보내시어
우리를 사랑하시려 애쓰시는 그 사랑으로 우리와 건강한 친밀함을 가지셨으니까요.
하느님의 완전함을 닮아가기 위한 사랑의 이 두 가지 기본 방향,
즉 건강한 거리와 건강한 친밀함을 가지는 것은
특히 우리와 같이 (수도)공동체를 사는 이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위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거리와 친밀함을 가지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우선 건강한 거리를 가지지 위해 우리는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살아갈 힘을 배워야합니다.
그리고 쾌락이나 중독과 같은 거짓된 기쁨에 의존하지 않을 고독의 힘을 배워야 하고,
친밀함 안에서 성장하는 삶의 기쁨을 다른 이에게 나누는 봉사의 삶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자신의 “자유와 고독과 봉사”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가끔 자신을 돌아보며, “나는 누구에게 마음이 쏠리고 있고, 어떤 일에 얽매이고 있는지”
자신의 내적 자유에 대해 성찰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나는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느끼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지, 또는 인터넷이나 TV에 빠져 정신없는지” 돌아본다면,
자신이 고독을 어떻게 다루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도울 때 "마음이 복잡한지, 생각이 많은지, 자신이 느끼는 기쁨이 자연스러운지",
봉사의 마음을 성찰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를 고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 안의 자유와 고독과 봉사의 마음을 돌아보며
하느님 앞에 자신이 어디쯤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은 묵상거리가 될 것입니다. 아멘.
”주님, 요한이 당신 어깨에 기대어 온전히 당신의 사랑에 자신을 맡겼듯이 저도 당신 품에 안길 수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아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마태 5,46) 라고 말씀하시며,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계신데 이는 어떤 의미일까요?
사실 우리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좋습니다.
그는 나를 이해해주고, 보호해주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필요하고 세상을 사는 힘이 됩니다.
그렇게 사랑해주는 사람끼리 모여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공동체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을 그런 사랑이 부족한 상태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건강한 거리와 건강한 친밀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 관계를 맺음에 있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올바른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없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안에 건강한 거리가 없으면
그 사랑은 자유와 자율이 아니 속박이나 의존의 경향을 가지게 됩니다.
건강한 거리를 가지는 것은 서로를 자유롭게 합니다.
건강한 거리는 서로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고 서로의 존재와 행위에 대해 존중해줍니다.
그러나 건강한 거리없이 밀착하게 되면 애착의 경향이 드러나게 되고,
상대를 소유하고픈 욕망을 가져와 그의 자유와 존재를 속박하게 됩니다.
건강한 거리는 공동체 구성원 각자의 자율성이 보장되기에
공동체 구성원이 다른 공동체에 대한 지향을 가져도 수용할 여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거리가 없는 공동체는
다른 공동체의 지향하는 것이 자기 공동체에 대한 공격이자 침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거리가 없는 공동체는 그래서 결국 자기들만의 세계만을 고집하게 되고,
자기 세계 안에 있으면 동료이고, 자기 세계 밖에 있는 것은 모두 적으로 생각합니다.
건강한 거리가 자유와 자율성이 만드는 건강한 관계와 공동체의 확장성을 말한다면,
건강한 친밀함은 참된 생명력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어떤 존재와 친밀하게 되면
우리는 그 상대와 기쁨과 행복과 같은 영적 가치를 나누게 됩니다.
그런데 건강하지 못한 친밀함을 가질 때 우리는
자기 도취(중독)와 착취의 현상을 접하게 됩니다.
그 친밀함은 생명을 살리는 방향성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생명을 갉아먹는 치명적인 독이 되고 맙니다.
그리하여 자신만의 기쁨에 도취되어 쾌락에서 빠져 중독자가 되거나,
자신만의 기쁨을 얻기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고 그의 생명을 착취합니다.
그러나 건강한 친밀함은
서로가 지닌 기쁨의 본질을 알아보고 그 본질을 살려주기 위해 서로 노력합니다.
자신도 기쁘게 살고, 상대도 기쁘게 사는 방법을 서로 알고 성장시키는 것이죠.
그러한 건강한 친밀함이 있는 공동체는
다른 공동체에게 더 큰 기쁨과 생명이 있음을 알게 합니다.
그렇게 건강한 거리와 건강한 친밀함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아버지처럼 완전해지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세상 창조 때부터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며
우리와 건강한 거리를 가지셨고,
우리를 창조하신 처음부터 그리고 마침내 때가 차자 예수님을 보내시어
우리를 사랑하시려 애쓰시는 그 사랑으로 우리와 건강한 친밀함을 가지셨으니까요.
하느님의 완전함을 닮아가기 위한 사랑의 이 두 가지 기본 방향,
즉 건강한 거리와 건강한 친밀함을 가지는 것은
특히 우리와 같이 (수도)공동체를 사는 이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위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거리와 친밀함을 가지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우선 건강한 거리를 가지지 위해 우리는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살아갈 힘을 배워야합니다.
그리고 쾌락이나 중독과 같은 거짓된 기쁨에 의존하지 않을 고독의 힘을 배워야 하고,
친밀함 안에서 성장하는 삶의 기쁨을 다른 이에게 나누는 봉사의 삶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자신의 “자유와 고독과 봉사”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가끔 자신을 돌아보며, “나는 누구에게 마음이 쏠리고 있고, 어떤 일에 얽매이고 있는지”
자신의 내적 자유에 대해 성찰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나는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느끼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지, 또는 인터넷이나 TV에 빠져 정신없는지” 돌아본다면,
자신이 고독을 어떻게 다루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도울 때 "마음이 복잡한지, 생각이 많은지, 자신이 느끼는 기쁨이 자연스러운지",
봉사의 마음을 성찰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를 고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 안의 자유와 고독과 봉사의 마음을 돌아보며
하느님 앞에 자신이 어디쯤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은 묵상거리가 될 것입니다. 아멘.
”주님, 요한이 당신 어깨에 기대어 온전히 당신의 사랑에 자신을 맡겼듯이 저도 당신 품에 안길 수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