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누구나
힘들고 어려울 때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던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간절한 기도 안에서 하느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기쁨을 체험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보다 더 간절한 사람이 있었나보다고 생각하며 안타까워도 하고,
때로는 왜 나의 간절함을 하느님은 외면하는 것인지 불평을 할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또한 간절히 하느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에게, 만일 밤을 새워가며 하느님 기도한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인데,
예수님은 왜 밤을 새워가며 기도하시는 것이었을까요?
그분도 그만큼 절박한 순간이었을까요?
물론 절박한 순간, 어렵고 힘든 순간에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만약 그때에만 열심히 그리고 간절히 기도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기도가 아니겠죠.
게세마니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는 차치하고라도 우리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밤새워,
혹은 새벽, 동트기 전에 외딴 곳에 가시어 기도하는 모습을 자주 발견합니다.
이런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기도가 절박하고 어려운 순간에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우리가 전적으로 하느님 은총에 맡겨진 사람들이며,
우리 자신에게보다 오로지 하느님께 의지해야만 하는 사람들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어렵고 힘든 상황에 접할 때,
우리는 이것에 대해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되기에 더 절절히 하느님께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시련과 고통 같은 것이
우리를 더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변형시켜준다는 것을 체험하곤 합니다.
하느님의 이러한 변형의 힘, 다시 말해 기도를 통해 우리를 변화시켜주는 힘은 무엇일까요?
우리 신앙인들에게 그것은 우리 안에 이미 내재된 가능성,
다시 말해, 하느님의 힘, 선, 그리고 거룩함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안에 내재된 이런 가능성들이 기도를 통해 우리를 하느님의 사람으로 깨어나게 하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입니다.
사실 그러한 가능성을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능성 때문에 그분께서는 여전히 당신의 사람들을 부르고, 뽑고 계십니다.
때로 우리가 겪는 많은 어려움들은 그 자체로
우리 안에 있는 가능성들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하느님 안에 있지 않았던 자신을 보게 하고,
자신 안에 내재된 수많은 가능성들을 보게 하여
하느님 안에서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힘을 발견하게 하고 시작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매 순간 모든 방법을 다해 기도해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순간에 그리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우리 안에 내재된,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가능성을 깨어나게 하고 확인을 시켜주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모든 게 괜찮아질거야!’라며 무기력한 희망을 말하는 듯하지만,
실제로 기도는 우리를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저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그것만이 우리가 붙잡아야 할 유일한 것이라는
절박한 마음을 갖게 하고, 그것을 희망하게 하며, 희망을 실제로 시작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밤새워 기도하는 이유가 우리 안에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고
우리가 밤새워 기도해야할 이유가 우리는 포기하고 절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희망의 메시지를 구체화시키는 것이 우리의 몫이기에
그분은 열둘을 지금도 당신의 기도 안에서 세우고 계시는 것이겠죠.
오늘 우리가 그렇게 예수님의 기도 안에서 희망의 몫을 만들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 아멘.
* 참조 :
Sabbath 2008, 9월 9일 강론(by Fr. Martin Macasaet)
『영성생활』(38호), 도서출판 영성생활, 3-4쪽.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누구나
힘들고 어려울 때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던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간절한 기도 안에서 하느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기쁨을 체험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보다 더 간절한 사람이 있었나보다고 생각하며 안타까워도 하고,
때로는 왜 나의 간절함을 하느님은 외면하는 것인지 불평을 할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또한 간절히 하느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에게, 만일 밤을 새워가며 하느님 기도한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인데,
예수님은 왜 밤을 새워가며 기도하시는 것이었을까요?
그분도 그만큼 절박한 순간이었을까요?
물론 절박한 순간, 어렵고 힘든 순간에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만약 그때에만 열심히 그리고 간절히 기도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기도가 아니겠죠.
게세마니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는 차치하고라도 우리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밤새워,
혹은 새벽, 동트기 전에 외딴 곳에 가시어 기도하는 모습을 자주 발견합니다.
이런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기도가 절박하고 어려운 순간에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우리가 전적으로 하느님 은총에 맡겨진 사람들이며,
우리 자신에게보다 오로지 하느님께 의지해야만 하는 사람들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어렵고 힘든 상황에 접할 때,
우리는 이것에 대해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되기에 더 절절히 하느님께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시련과 고통 같은 것이
우리를 더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변형시켜준다는 것을 체험하곤 합니다.
하느님의 이러한 변형의 힘, 다시 말해 기도를 통해 우리를 변화시켜주는 힘은 무엇일까요?
우리 신앙인들에게 그것은 우리 안에 이미 내재된 가능성,
다시 말해, 하느님의 힘, 선, 그리고 거룩함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안에 내재된 이런 가능성들이 기도를 통해 우리를 하느님의 사람으로 깨어나게 하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입니다.
사실 그러한 가능성을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능성 때문에 그분께서는 여전히 당신의 사람들을 부르고, 뽑고 계십니다.
때로 우리가 겪는 많은 어려움들은 그 자체로
우리 안에 있는 가능성들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하느님 안에 있지 않았던 자신을 보게 하고,
자신 안에 내재된 수많은 가능성들을 보게 하여
하느님 안에서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힘을 발견하게 하고 시작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매 순간 모든 방법을 다해 기도해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순간에 그리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우리 안에 내재된,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가능성을 깨어나게 하고 확인을 시켜주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모든 게 괜찮아질거야!’라며 무기력한 희망을 말하는 듯하지만,
실제로 기도는 우리를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저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그것만이 우리가 붙잡아야 할 유일한 것이라는
절박한 마음을 갖게 하고, 그것을 희망하게 하며, 희망을 실제로 시작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밤새워 기도하는 이유가 우리 안에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고
우리가 밤새워 기도해야할 이유가 우리는 포기하고 절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희망의 메시지를 구체화시키는 것이 우리의 몫이기에
그분은 열둘을 지금도 당신의 기도 안에서 세우고 계시는 것이겠죠.
오늘 우리가 그렇게 예수님의 기도 안에서 희망의 몫을 만들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 아멘.
* 참조 :
Sabbath 2008, 9월 9일 강론(by Fr. Martin Macasaet)
『영성생활』(38호), 도서출판 영성생활, 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