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4,13 참조) 사람을 초대하다

2022-08-28
조회수 511

1990년대 초반 세르비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 당시

세르비아는 오랜 동안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포위하고 폭격했습니다.

유럽의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였던 사라예보가 처참하게 무너지자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면서 사라예보의 주민들을 위해 구호물자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때 수잔 손택이라는 사람은 물이나 빵같은 구호물자 대신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연극 공연을 연출하기 위해 사라예보를 찾아갔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언제 폭탄이 떨어져 죽을지 모르는 곳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이

제정신이냐고 비난했습니다.

더군다나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연극은 알다시피

유쾌한 공연도 아니고, 코미디도 아닌 지적이고 심오한 연극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히려 사라예보 사람들을 더 우울하게 만드는 것 아니냐며 걱정했습니다.

,

사람들이 수잔 손택에게 사라예보 사람들이 그런 연극을 보러 오기나 하겠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폭격으로 망가진 사라예보의 이미지만 생각하느라,

사라예보가 과거에 활기 넘치고 매력적인 한 나라의 수도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듯합니다.

재능있는 배우들이 여전히 사라예보에 있듯이,

교양있는 관객들도 여전히 사라예보에 있습니다.

단지 과거와 차이가 있다면 배우들과 관객들이 극장에 오다가 폭격에 맞거나 총에 맞아 죽을 수가 있다는 사실 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현관 밖에 나섰을 때 뿐만 아니라, 침실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을 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수잔 손택은 사라예보에 가서 물도 없고, 화장실도 고장난 열악한 상황과

매일 폭탄 떨어지는 소리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하여 공연을 했습니다.

 

수잔 손택이 폭탄 떨어지는 사라예보에서 증명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 모두가 살아갈 이유와 의미가 있는 사람이며,

사라예보의 사람들도 그러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연극을 공연하여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고도를 기다릴 수 있는 자유, 예술을 여전히 사랑하고,

여전히 세상에 대해 감동할 수 있는 자유를 사라예보 사람들과 나눈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도, 내 옆의 사람이 죽어가도 우리는 여전히 살아야 하고,

살아있음을 가장 뜨겁게 느끼며 확인하는 길은,

단지 우리가 먹고 입고 싸는 동물이 아니라

자유를 갈망하고 사랑을 갈망하는 존재라는 것을

연극(예술)으로 증명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라예보의 고통을 듣고 많은 물과 식량과 생필품을 보낼 때,

수잔 손택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존엄성을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생명의 위협을 무릎쓰고 거리에서 길게 줄을 서 겨우 얻어 온 물을

집에 돌아와 막한 화장실에 부으며 인간적인 굴욕감과 비참함을 느낄 때,

그들은 폭탄의 공포보다 훨씬 더 깊은 내적 죽음의 상처에 이를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녀는 사라예보의 시민들과 함께 연극을 준비하며

그들이 단지 인도주의적인 원조를 받는 수동적인 인간이 아니라,

자기가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하나의 정상적 인격을 지닌 사람임을 확인시켜 준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바리사이에게 잔치를 베풀 때,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사랑을 나누고자 할 때,

사람들이 지닌 부족함, 아픔 그리고 고통의 순간들을

자기 삶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기 문제가 아닌 다른 사람의 문제에 눈물을 흘리거나 아파하며 감응할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을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내 몸의 고통이 아닌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내 마음으로 같이 느끼고 앓는다는 것은

연민이나 동정 또는 분석이나 평가가 아니라, 그들 삶을 향한 완전한 몰입,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실용성도 없고 외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 듯 하지만,

나를 잊고 다른 사람을 꿈꿀 수 있는 절실함은 바로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힘, 사랑입니다.

수잔 손택은 사라예보의 사람들이 인간의 삶을 꿈꾸게 했고,

예수님을 오늘 우리에게 사람들이 인간의 삶을 꿈꿀 수 있게 초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지닌 부족함, 아픔 그리고 고통의 순간을

자기 삶 가운데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오늘 그렇게 다른 사람의 절박함을 나의 절박함이 되게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 나라 가까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 당신이 저희를 보며 아파하는 그 마음을 저희도 다른 형제에게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 인용 참조 : 정여울 著, 『시네필 다이어리 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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