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가보면 절의 여러 전각들이 보이지도 않는 곳에
일주문이라는 것이 서 있습니다.
그렇게 일주문을 멀찍이 절 입구에 세워 놓는 이유는
신성한 사찰에 들어서기 전에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문을 들어선다고 해서 진리를 깨닫고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제 새로운 세상에 들어왔으니 단단히 결심하고 힘을 내서
참된 진리와 영원한 행복의 삶을 시작하는 순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일주문을 들어서는 것은 속세와는 다른 세상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인들 역시 성당 문을 들어서면서 이런 체험을 하게 됩니다.
성당 문을 들어서는 순간 세상의 어지러움과 아픔에서 벗어나
주님의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성당 문 안에서 만나게 되는 세상은 주님께서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다툼과 미움과 고통을 어루만져 주시고, 치유해주시고, 은총으로 도와주시는 곳이죠.
그래서 성당에 들어와 앉아 있으면 편안해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는 양들의 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문들이 있습니다.
성당 문이 있는가 하면,
우리들이 사는 집에도 대문이 있고, 현관문이 있고, 다시 자기 방문이 있습니다.
밖에 나가면 우리가 열고 들어가는 문도 수없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어떤 문들은 우리가 열고 들어가지 말아야 할 문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양들의 문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다시 음미해 봅니다.
그 수많은 문의 기능은 모두 문 밖의 공간과 문 안의 공간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문의 본래 뜻은 그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우리가 무엇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양들의 문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열고 들어가야 문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남의 집 문고리도 아니고, 어디 술집 문도 아니며,
우리를 감언이설과 호기심으로 유혹하는 계룡산 도사님의 점집 문도 아닙니다.
그 문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문, 예수 그리스도 자체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은 어디서 만날 수 있고, 어떻게 열 수 있을까요?
먼저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오늘처럼 여러분이 성당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고,
성당문을 열고 들어와 십자가의 예수님 앞에 앉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행복해지는 것,
바로 우리 자신이 주님 안에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좀더 노력해서 열어야 할 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마음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 안에서 예수님을 기억하는 하는 것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일들 속에서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 자체가 바로
예수님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을 어떻게 열까요?
그것은 좀 더 쉽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을 사랑했던 예수님을 우리도 사랑하는 것이고,
그 사랑을 따라 우리 자신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문을 여는 방법입니다.
행복해지고 싶으시죠?
그러면 자주 예수님을 기억하세요.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에 기뻐하고, 여러분도 그 사랑을 따라하면 행복해집니다.
왜냐하면 그 행복의 문은 바로 예수님이시고,
그 문은 바로 이 안에(가슴을 두드리며)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시니까요.
"주님, 제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 제 안에 들어와 이제 함께 놀아요."

절에 가보면 절의 여러 전각들이 보이지도 않는 곳에
일주문이라는 것이 서 있습니다.
그렇게 일주문을 멀찍이 절 입구에 세워 놓는 이유는
신성한 사찰에 들어서기 전에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문을 들어선다고 해서 진리를 깨닫고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제 새로운 세상에 들어왔으니 단단히 결심하고 힘을 내서
참된 진리와 영원한 행복의 삶을 시작하는 순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일주문을 들어서는 것은 속세와는 다른 세상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인들 역시 성당 문을 들어서면서 이런 체험을 하게 됩니다.
성당 문을 들어서는 순간 세상의 어지러움과 아픔에서 벗어나
주님의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성당 문 안에서 만나게 되는 세상은 주님께서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다툼과 미움과 고통을 어루만져 주시고, 치유해주시고, 은총으로 도와주시는 곳이죠.
그래서 성당에 들어와 앉아 있으면 편안해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는 양들의 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문들이 있습니다.
성당 문이 있는가 하면,
우리들이 사는 집에도 대문이 있고, 현관문이 있고, 다시 자기 방문이 있습니다.
밖에 나가면 우리가 열고 들어가는 문도 수없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어떤 문들은 우리가 열고 들어가지 말아야 할 문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양들의 문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다시 음미해 봅니다.
그 수많은 문의 기능은 모두 문 밖의 공간과 문 안의 공간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문의 본래 뜻은 그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우리가 무엇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양들의 문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열고 들어가야 문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남의 집 문고리도 아니고, 어디 술집 문도 아니며,
우리를 감언이설과 호기심으로 유혹하는 계룡산 도사님의 점집 문도 아닙니다.
그 문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문, 예수 그리스도 자체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은 어디서 만날 수 있고, 어떻게 열 수 있을까요?
먼저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오늘처럼 여러분이 성당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고,
성당문을 열고 들어와 십자가의 예수님 앞에 앉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행복해지는 것,
바로 우리 자신이 주님 안에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좀더 노력해서 열어야 할 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마음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 안에서 예수님을 기억하는 하는 것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일들 속에서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 자체가 바로
예수님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을 어떻게 열까요?
그것은 좀 더 쉽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을 사랑했던 예수님을 우리도 사랑하는 것이고,
그 사랑을 따라 우리 자신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문을 여는 방법입니다.
행복해지고 싶으시죠?
그러면 자주 예수님을 기억하세요.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에 기뻐하고, 여러분도 그 사랑을 따라하면 행복해집니다.
왜냐하면 그 행복의 문은 바로 예수님이시고,
그 문은 바로 이 안에(가슴을 두드리며)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시니까요.
"주님, 제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 제 안에 들어와 이제 함께 놀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