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교회의 가장 거룩한 시간들을 보내게 됩니다.
이 시기에 교회는 하느님이신 분이 종의 신분으로 오셔서, 십자가 죽음을 당하신 사건의 마지막 순간을 재현하게 됩니다.
그것은 단순히 예전의 사건을 다시 재현하며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 안에서, 교회 안에서, 그리고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삶의 모습을 다시 현실화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의 죽음이 인간이 그분을 죽여 십자가에 매단 잘못된 사건이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계획하셨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 매일의 삶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십자가의 의미를 현실이 되게 하는 거룩한 기억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은총과 함께하는 거룩한 기억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창조계획을 우리 몸으로 “지금” 이루어내는 거룩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을 살아가는 것이 두렵고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중1쯤 되어 보이는 작은 아이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요청하는 듯 했습니다.
교복을 단정하게 입기는 했지만 부자유스러운 손짓을 하는데, 걸음걸이가 한 눈에 장애아라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그 학생이 사람들에게 손짓으로 무엇인가 이야기하는데, 그 소리가 “어--어--”하는 것으로 보아 말도 잘못하는 듯 했습니다.
그 학생은 무엇인가 도움을 청하려는 듯 손짓을 해가며 자신의 교복 윗도리 주머니에 손을 넣는 시늉을 해댔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학생이 다가오면 주춤주춤하고 피했죠.
아마도 다들 그 학생이 버스요금을 구걸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아주머니가 그 학생에게 다가가서는 그 학생이 힘들게 손짓하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거기에서 카드를 꺼냈습니다. 버스를 탈 수 있는 카드였습니다.
카드를 받아든 학생은 아주머니께 기쁘게 인사하며 집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낯선 누군가 다가오면 주춤주춤 피하거나 애써 외면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또는 가볍게 돈을 주어 쥐며 뿌듯해 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무엇을 바라는지, 보려하고 들으려하는 것이 예수님의 삶을 따르려는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이신 분이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 모습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하느님의 삶이 우리 안에 살아난다는 것,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상대방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보기에 좋고, 아름답고, 가슴 설레는 사랑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용서하고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며, 마침내 그 사람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사순절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사순절은 매년 반복되지만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살아갈 시간은 매번 반복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을 진정 원한다면 자신을 둘러싼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담긴 그리스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 주기를 애원하는 지 볼 수 있다면 가장 그리스도를 잘 닮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님은 닮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한 주간 우리의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찾아보고 그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기도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교회의 가장 거룩한 시간들을 보내게 됩니다.
이 시기에 교회는 하느님이신 분이 종의 신분으로 오셔서, 십자가 죽음을 당하신 사건의 마지막 순간을 재현하게 됩니다.
그것은 단순히 예전의 사건을 다시 재현하며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 안에서, 교회 안에서, 그리고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삶의 모습을 다시 현실화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의 죽음이 인간이 그분을 죽여 십자가에 매단 잘못된 사건이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계획하셨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 매일의 삶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십자가의 의미를 현실이 되게 하는 거룩한 기억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은총과 함께하는 거룩한 기억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창조계획을 우리 몸으로 “지금” 이루어내는 거룩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을 살아가는 것이 두렵고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중1쯤 되어 보이는 작은 아이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요청하는 듯 했습니다.
교복을 단정하게 입기는 했지만 부자유스러운 손짓을 하는데, 걸음걸이가 한 눈에 장애아라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그 학생이 사람들에게 손짓으로 무엇인가 이야기하는데, 그 소리가 “어--어--”하는 것으로 보아 말도 잘못하는 듯 했습니다.
그 학생은 무엇인가 도움을 청하려는 듯 손짓을 해가며 자신의 교복 윗도리 주머니에 손을 넣는 시늉을 해댔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학생이 다가오면 주춤주춤하고 피했죠.
아마도 다들 그 학생이 버스요금을 구걸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아주머니가 그 학생에게 다가가서는 그 학생이 힘들게 손짓하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거기에서 카드를 꺼냈습니다. 버스를 탈 수 있는 카드였습니다.
카드를 받아든 학생은 아주머니께 기쁘게 인사하며 집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낯선 누군가 다가오면 주춤주춤 피하거나 애써 외면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또는 가볍게 돈을 주어 쥐며 뿌듯해 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무엇을 바라는지, 보려하고 들으려하는 것이 예수님의 삶을 따르려는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이신 분이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 모습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하느님의 삶이 우리 안에 살아난다는 것,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상대방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보기에 좋고, 아름답고, 가슴 설레는 사랑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용서하고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며, 마침내 그 사람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사순절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사순절은 매년 반복되지만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살아갈 시간은 매번 반복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을 진정 원한다면 자신을 둘러싼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담긴 그리스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 주기를 애원하는 지 볼 수 있다면 가장 그리스도를 잘 닮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님은 닮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한 주간 우리의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찾아보고 그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기도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