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7]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2018-10-17
조회수 545

<갈라5,18-25 / 루카11,42-46>


존 포웰 신부님은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을 통해서, 내면의 행복에 이르기 위한 열 가지 훈련을 제시하시는데, 그 첫 번째로 제시된 훈련은 바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기”입니다. “나는 참으로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가? 나는 현재의 나 자신을 즐기는가? 나는 현재의 자신 안에서 의미와 만족을 발견하는가?” 등을 자신에게 물어보고, 그 물음에 “네”라고 답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들을 하나씩 치워냄으로써, 마침내 자신을 투명하고 솔직하게 인정하도록 도와주는 훈련이지요.


생각해 보면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나 아닌 다른 모습으로 포장하고 살아가는 이들보다 더 불행한 사람도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덧칠한 모습으로 살아가려니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자신에 대한 어떤 긍정적인 말도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을 테니 말이지요. 그래서 간혹 인터넷 SNS에 행복해 보이는 사진들만 마치 자기를 광고하듯 올리는 사람들을 보면, 이들은 정말로 행복한 걸까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혹시라도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면서, 자기 모습을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말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교만과 위선으로 자신들을 포장한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에게 불행을 말씀하십니다. 남들보다 나은 사람처럼 보이길 바라고, 부족한 부분은 땅속 깊이 파묻은 무덤처럼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않는 이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나 자신마저 속이고 거짓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오늘 말씀도 불행하리라는 저주의 말씀이라기보다, 자기 모습을 보지 못하는 그들에 대한 답답한 심정, 제발 자기 모습을 솔직히 바라보라는 간절한 바람에서 하신 말씀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주교님의 순교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순교자들이 박해받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근본적인 이유 역시, 그들이 자신의 참모습을 부정하지 않고, 또 거짓된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냐시오 성인도, “하느님의 밀알이며, 맹수라는 도구로 하느님께 봉헌되는 희생 제물”로서의 자신을 부정하실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기에 하느님의 의로움과 사랑에 자신을 맡기고 마침내 순교에 이르실 수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또 성인께서는 신자들에게 자신의 순교를 방해하지 말라고 부탁하시면서, 순교보다 당신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없다고도 하셨는데, 이를 통해 참다운 행복이란 결국 나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다시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의 축일을 지내는 오늘, 성인의 전구에 의지해서, 우리도 각자의 참모습을 올바로 보고, 본 바를 그대로 인정하고, 또 인정한 바를 주님 사랑 안에서 살아감으로써 참 행복에 다가갈 수 있는 은총을 함께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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