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는 외적 행위에 대한 죄뿐만이 아니라,
형제를 “바보” 또는 “멍청이”라고 부르는 것 또한 하느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외적 행동으로 만들어진 죄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짓는 죄까지 정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비록 살인하지 마라, 바보, 멍청이 라는 말들이 오늘 복음에서 강조되고 있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또한 강조되고 있는 말은 “형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형제는 누구일까요?
사회적 개념에서 형제는 같은 가문과 같은 혈통, 같은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있어서 이 말은 이교도이거나 유대인이거나,
자유인이거나 노예이거나 하는 구별이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새로이 새워주신 율법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신문 사회면에 등장하는 범죄와 배신으로 얼룩진 기사들이 종종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다른 이들마저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렇게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 때마다 사람들 사이는 섬이 되고 고립되어갑니다.
이런 사람간의 고립감은 서로가 형제로서 하나라는 열린 공동체적 삶이 아닌 살인자나,
적대자, 반대자 혹은 미워하는 자가 우리를 둘러싼, 삭막한 자기만의 닫힌 공동체의 삶을 살게 됩니다.
물론 우리 사회와 우리 공동체가 이런 닫힌 공동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와 공동체가 모두를 형제로 받아들이고 깊은 친교를 나누는 열린 신앙 공동체로 성장한 것 역시 아직은 아닙니다.
다만 서로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위로하기를 어려워하지 않는 관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형제는 거기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살인자와 반대자와 무례한 자를 사랑하고 받아들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먼저 형제로서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며 바보 같은 형제를 바보라고,
일을 잘 못하는 형제를 멍청이라고 부르는 것은 늘상 일어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이 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랑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새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먼저 아무런 선입견 없이 사람들을 형제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이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위로해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형제적 사랑"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은혜는 마음에 새기고 원한은 냇물에 새기는" 더 깊은 하느님의 사랑을 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주님은 바라실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내국인, 외국인, 이주민, 다문화 가정, 장애인, 비장애인 같은 말은 필요없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 공동체에는 필요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 앞에 같은 사람이고 형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에게 형제이기를 바라셨음을 꼭 기억하는 한 주가 되길 바랍니다.
“주님, 오늘 제 곁의 사람들을 당신이 주신 선물, 형제로 바라보게 하소서. 아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는 외적 행위에 대한 죄뿐만이 아니라,
형제를 “바보” 또는 “멍청이”라고 부르는 것 또한 하느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외적 행동으로 만들어진 죄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짓는 죄까지 정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비록 살인하지 마라, 바보, 멍청이 라는 말들이 오늘 복음에서 강조되고 있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또한 강조되고 있는 말은 “형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형제는 누구일까요?
사회적 개념에서 형제는 같은 가문과 같은 혈통, 같은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있어서 이 말은 이교도이거나 유대인이거나,
자유인이거나 노예이거나 하는 구별이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새로이 새워주신 율법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신문 사회면에 등장하는 범죄와 배신으로 얼룩진 기사들이 종종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다른 이들마저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렇게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 때마다 사람들 사이는 섬이 되고 고립되어갑니다.
이런 사람간의 고립감은 서로가 형제로서 하나라는 열린 공동체적 삶이 아닌 살인자나,
적대자, 반대자 혹은 미워하는 자가 우리를 둘러싼, 삭막한 자기만의 닫힌 공동체의 삶을 살게 됩니다.
물론 우리 사회와 우리 공동체가 이런 닫힌 공동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와 공동체가 모두를 형제로 받아들이고 깊은 친교를 나누는 열린 신앙 공동체로 성장한 것 역시 아직은 아닙니다.
다만 서로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위로하기를 어려워하지 않는 관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형제는 거기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살인자와 반대자와 무례한 자를 사랑하고 받아들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먼저 형제로서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며 바보 같은 형제를 바보라고,
일을 잘 못하는 형제를 멍청이라고 부르는 것은 늘상 일어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이 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랑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새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먼저 아무런 선입견 없이 사람들을 형제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이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위로해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형제적 사랑"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은혜는 마음에 새기고 원한은 냇물에 새기는" 더 깊은 하느님의 사랑을 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주님은 바라실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내국인, 외국인, 이주민, 다문화 가정, 장애인, 비장애인 같은 말은 필요없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 공동체에는 필요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 앞에 같은 사람이고 형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에게 형제이기를 바라셨음을 꼭 기억하는 한 주가 되길 바랍니다.
“주님, 오늘 제 곁의 사람들을 당신이 주신 선물, 형제로 바라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