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렛의 예수님께서는 설교의 달인이시고 대단한 이야기꾼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언덕에서, 한적한 곳에서 또는
예루살렘 성전 경내에 둘러앉아서
젊은 친구들에게 설교하시는 모습을 쉽게 그려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위의 모든 것을 자신의 가르침과 설교에 구체화시키셨고
인간 상황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엄청난 예술성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의 이런 특징이 마태오복음의 산상설교의 계속인
오늘의 복음(5,13-16)에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옛 성서시대에 소금은 가장 중요한 필수품 중의 하나였습니다.
소금은 방부제로 뿐만 아니라 맛을 내는데 쓰였습니다.
소금은 식품용도 이외에 희생제물 즉 곡식 제물과 번제물에게 뿌려졌습니다.
소금은 계약에 사용되었고, 공약을 나타냈습니다.
“너희가 바치는 곡식 제물에 너희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소금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너희의 모든 예물과 함께 소금도 바쳐야 한다”(레위 2,13).
구약은 또한 “소금 계약”을 얘기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에게 들어 올려바치는 거룩한 예물들은 모두, 영원한 규정에 따라, 내가 너와 너의 아들들,
그리고 너와 함께 있는 너의 딸들에게 준다. 이는 너와 너의 후손들을 위하여 주님 앞에서 맺은 영원한 소금 계약이다”(민수 18,19).
“소금계약”은 영원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과 함께 소금을 먹는 것은 충성으로 묶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성경 저자 마르코가 다음과 같이 말할 때 가리켰던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마르코 9,50).
소금은 또한 갓 태어난 아기에게 발라주는데,
의약적인 이유 또는 다른 이유 즉 악마로부터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처럼 구약과 신약 시대에 소금은 귀중한 생활 필수품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금은 음식에 맛과 풍미를 주는 일상용품이었습니다.
중요한 방부제였고, 또한 사람들에게 다른 무엇을 목말라하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을 통해
제자들이 세상의 맛과 풍미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께서 세상에 선포하신 진리의 방부제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좀 더 진리에 목말라하고,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목말라하게 하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들은 복음 말씀 중에서 5,13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이라고 번역되는 부분을 성경의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소금이 어리석게 된다면”이라는 것입니다.
소금이 어리석게 된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것 같아
복음 말씀을 잘 알아듣게 하려고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이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원문의 “소금이 어리석게 된다면”이라고 예수님이 이상하게 말씀하신 것은
왜 그렇게 된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말씀하셨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의 소금”이라고 부르실 때,
예수님께서는 앞서 얘기한 소금의 많은 차원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 무미건조하고 재미없고 희망없는,
아무 맛도 없는 세상을 살맛나게 할 수 있고,
부패할 수 있는 세상을 생기있게 보존할 수 있으며,
하느님과의 계약을 따라 충실히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줄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빌리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음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말은 언제나 정답고 또 소금으로 맛을 낸 것 같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누구에게나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아야 합니다(콜로새 4,6).
특히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빛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너희“라는 말을 특별히 강조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여기와 있는 사람,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 예수님께 은총을 구하고, 축복을 구하는 바로 우리 자신이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리석은 소금이 아니라,
세상을 살맛나게 하고 자기 자신의 영혼을 생기있게 만들 수 있는
싱싱한 소금이 되기를 바랍니다.
싱싱한 소금이 되는 것은 간단합니다.
나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좋은 일을 하면 됩니다.
이 한 주간 기쁘고 행복한 일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아멘.

나자렛의 예수님께서는 설교의 달인이시고 대단한 이야기꾼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언덕에서, 한적한 곳에서 또는
예루살렘 성전 경내에 둘러앉아서
젊은 친구들에게 설교하시는 모습을 쉽게 그려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위의 모든 것을 자신의 가르침과 설교에 구체화시키셨고
인간 상황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엄청난 예술성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의 이런 특징이 마태오복음의 산상설교의 계속인
오늘의 복음(5,13-16)에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옛 성서시대에 소금은 가장 중요한 필수품 중의 하나였습니다.
소금은 방부제로 뿐만 아니라 맛을 내는데 쓰였습니다.
소금은 식품용도 이외에 희생제물 즉 곡식 제물과 번제물에게 뿌려졌습니다.
소금은 계약에 사용되었고, 공약을 나타냈습니다.
“너희가 바치는 곡식 제물에 너희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소금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너희의 모든 예물과 함께 소금도 바쳐야 한다”(레위 2,13).
구약은 또한 “소금 계약”을 얘기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에게 들어 올려바치는 거룩한 예물들은 모두, 영원한 규정에 따라, 내가 너와 너의 아들들,
그리고 너와 함께 있는 너의 딸들에게 준다. 이는 너와 너의 후손들을 위하여 주님 앞에서 맺은 영원한 소금 계약이다”(민수 18,19).
“소금계약”은 영원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과 함께 소금을 먹는 것은 충성으로 묶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성경 저자 마르코가 다음과 같이 말할 때 가리켰던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마르코 9,50).
소금은 또한 갓 태어난 아기에게 발라주는데,
의약적인 이유 또는 다른 이유 즉 악마로부터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처럼 구약과 신약 시대에 소금은 귀중한 생활 필수품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금은 음식에 맛과 풍미를 주는 일상용품이었습니다.
중요한 방부제였고, 또한 사람들에게 다른 무엇을 목말라하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을 통해
제자들이 세상의 맛과 풍미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께서 세상에 선포하신 진리의 방부제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좀 더 진리에 목말라하고,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목말라하게 하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들은 복음 말씀 중에서 5,13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이라고 번역되는 부분을 성경의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소금이 어리석게 된다면”이라는 것입니다.
소금이 어리석게 된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것 같아
복음 말씀을 잘 알아듣게 하려고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이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원문의 “소금이 어리석게 된다면”이라고 예수님이 이상하게 말씀하신 것은
왜 그렇게 된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말씀하셨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의 소금”이라고 부르실 때,
예수님께서는 앞서 얘기한 소금의 많은 차원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 무미건조하고 재미없고 희망없는,
아무 맛도 없는 세상을 살맛나게 할 수 있고,
부패할 수 있는 세상을 생기있게 보존할 수 있으며,
하느님과의 계약을 따라 충실히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줄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빌리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음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말은 언제나 정답고 또 소금으로 맛을 낸 것 같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누구에게나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아야 합니다(콜로새 4,6).
특히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빛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너희“라는 말을 특별히 강조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여기와 있는 사람,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 예수님께 은총을 구하고, 축복을 구하는 바로 우리 자신이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리석은 소금이 아니라,
세상을 살맛나게 하고 자기 자신의 영혼을 생기있게 만들 수 있는
싱싱한 소금이 되기를 바랍니다.
싱싱한 소금이 되는 것은 간단합니다.
나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좋은 일을 하면 됩니다.
이 한 주간 기쁘고 행복한 일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