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잘 알려진 마태오 복음사가가 전하는 진복팔단에 대한 복음 말씀을 듣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성경에서는 8가지 행복 선언이 등장한다 하여 8개의 행복선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영어본은 9가지로 되어 있어 번역상의 차이가 발견되긴 합니다.
신학자들은 11절의 행복선언은 제자들을 향한 것이므로 3절에서 10절까지의 8가지를 실제로 예수님의 "행복선언"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행복선언은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이미 우리가 행복의 상태에 있으니 이제 그 행복한 삶을 시작하라고 초대하고 있습니다.
행복선언을 시작하는 3절과 마치는 10절이 같은 약속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 나라는 목표가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보상이 아니라 소속입니다.
"행복하여라"라고 번역하는 희랍어 μακάριοι(마카리오이)는 노력하면 도달하는 상태가 아니라,
이미 하느님의 통치 안에 들어온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하는 신분 규정입니다.
그래서 행복선언은 “이렇게 살면 복을 받을 것이다”가 아니라, “너는 이미 이런 행복한 삶의 구조 안에 들어와 있다”는 선언입니다.
가난, 슬픔, 온유, 갈망, 자비, 깨끗한 마음, 평화, 박해는 복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 안에 들어와 사는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형태입니다
즉, 오늘 우리가 들은 마태오 복음의 행복선언은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을 더해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행복한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해지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그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죠.
어떤 사람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가족 간의 화합을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명예를 귀하게 여겨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유명한 TV 스타가 되는 것이 행복일 수도 있고,
나이 많이 든 할머니는 튼실한 손자 하나 갖는 것이 행복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때 행복하다고 말하시겠습니까?
2000년 동안 교회의 역사를 살아왔던 신앙인들과 교회에게 행복은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느꼈던 행복을 지금 자신이 사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느끼며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임은 너무도 자명한 일일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성인들이 그러한 삶을 살았고, 오늘 우리도 그러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삶과 예수님과 함께 누리는 행복을 지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오 복음을 다시 한 번 음미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 행복에 관한 말씀이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을 더 채워야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라기보다,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를 의미 안에서, 오늘 이 마태오 복음의 행복 선언을 이렇게 다시 읽어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과 사람을 사랑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사랑이 얼마나 값진 것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편안하게 사랑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사랑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사랑하는 기쁨을 알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사랑을 욕심없이 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사랑이 모든 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그들은 사랑이 희생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사랑을 시작해 보십시오. 그러면 분명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아멘!
“주님, 당신으로 저는 행복합니다. 이 행복을 다시 당신과 나눌 수 있게 해 주소서. 아멘.”

오늘 우리는 잘 알려진 마태오 복음사가가 전하는 진복팔단에 대한 복음 말씀을 듣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성경에서는 8가지 행복 선언이 등장한다 하여 8개의 행복선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영어본은 9가지로 되어 있어 번역상의 차이가 발견되긴 합니다.
신학자들은 11절의 행복선언은 제자들을 향한 것이므로 3절에서 10절까지의 8가지를 실제로 예수님의 "행복선언"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행복선언은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이미 우리가 행복의 상태에 있으니 이제 그 행복한 삶을 시작하라고 초대하고 있습니다.
행복선언을 시작하는 3절과 마치는 10절이 같은 약속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 나라는 목표가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보상이 아니라 소속입니다.
"행복하여라"라고 번역하는 희랍어 μακάριοι(마카리오이)는 노력하면 도달하는 상태가 아니라,
이미 하느님의 통치 안에 들어온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하는 신분 규정입니다.
그래서 행복선언은 “이렇게 살면 복을 받을 것이다”가 아니라, “너는 이미 이런 행복한 삶의 구조 안에 들어와 있다”는 선언입니다.
가난, 슬픔, 온유, 갈망, 자비, 깨끗한 마음, 평화, 박해는 복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 안에 들어와 사는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형태입니다
즉, 오늘 우리가 들은 마태오 복음의 행복선언은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을 더해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행복한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해지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그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죠.
어떤 사람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가족 간의 화합을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명예를 귀하게 여겨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유명한 TV 스타가 되는 것이 행복일 수도 있고,
나이 많이 든 할머니는 튼실한 손자 하나 갖는 것이 행복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때 행복하다고 말하시겠습니까?
2000년 동안 교회의 역사를 살아왔던 신앙인들과 교회에게 행복은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느꼈던 행복을 지금 자신이 사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느끼며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임은 너무도 자명한 일일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성인들이 그러한 삶을 살았고, 오늘 우리도 그러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삶과 예수님과 함께 누리는 행복을 지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오 복음을 다시 한 번 음미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 행복에 관한 말씀이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을 더 채워야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라기보다,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를 의미 안에서, 오늘 이 마태오 복음의 행복 선언을 이렇게 다시 읽어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과 사람을 사랑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사랑이 얼마나 값진 것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편안하게 사랑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사랑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사랑하는 기쁨을 알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사랑을 욕심없이 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사랑이 모든 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그들은 사랑이 희생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사랑을 시작해 보십시오. 그러면 분명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아멘!
“주님, 당신으로 저는 행복합니다. 이 행복을 다시 당신과 나눌 수 있게 해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