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설가 레오 부스칼리아가 쓴 “동물학교”(Animal School) 라는 책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토끼, 새, 물고기, 두더지, 오리, 개 등 여러 동물들이 모여 학교를 세우기로 하고
함께 모여 무슨 수업을 할지 시간표를 짰습니다.
토끼는 반드시 달리기 수업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동물들은 토끼의 완강함에 밀려 달리기 수업을 만들었습니다.
물고기는 수영 시간을 넣어야한다고 주장해서 수영 시간도 교과목에 들어갔습니다.
새는 비행 시간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그렇게 했고,
두더지는 땅파기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그의 의견도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 동물들이 각기 자신들이 잘하는 특별한 것들을
모두 수업 시간에 반영하는 것은 좋았는데,
그들은 졸업 학점을 따기 위해서는 그 수업들을 다 들어야 했습니다.
토끼는 달리기 수업에서 정말 뛰어났습니다. 아무도 그처럼 달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토끼는 비행 수업도 들어가야 했는데,
다른 동물들은 토끼를 부추키고는 나무위에서 밀며 “토끼야, 날아!”하며 응원했습니다.
이 불쌍한 토끼는 나무에서 하늘을 향해 풀쩍하고 뛰어 올랐지만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져 그만 깁스를 하고 말았습니다.
토끼는 더 이상 빨리 달리지 못해 달리기 수업에서도 겨우 70점을 받게 되었고,,
비행 수업에서는 정말 열심히 노력했지만 끝내 낙제를 겨우 면하면서 60점을 받았습니다.
새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어디든지 솜털처럼 가볍게 날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동물이 새에게 두더지처럼 땅에 굴을 파게 했고, 그 안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불쌍한 새는 날개와 부리를 다쳐서 더 이상 날지 못했습니다.
다른 동물들은 그런 새를 보고 기뻐하며 그에게 비행점수 70점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동물학교가 끝나고 모두가 졸업할 때가 되었을 때
동물들은 모두 몸에 상처를 입어서 누구는 목발을 집고 절룩거리고 있었고,
누구는 휠체어에 앉아서 졸업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상처입은 이 동물들 앞에서 누가 졸업사를 읽은지 아세요?
그것은 다름 아닌 뭔가 어리숙해 보이고, 요리조리 잘도 빠지던 미꾸라지였습니다.
미꾸라지는 놀랍게도 모든 면에서 평균점을 받아 다른 누구보다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에게 각자에게만 있는 유일한 재능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재능은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서만 주신 하느님의 선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을 위해 주신 하느님의 선물이고, 서로를 위해 주신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재능을 활용할 능력도 가지고 있고,
하느님의 사랑의 빛으로 우리 주위의 세상을 비출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받은 능력과 은총을 통해 서로에게 빛이 되어 주고 힘이 되어 주라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겠죠.
그런데 동물들이 자신의 재주는 뽐내면서도, 다른 이들의 재주는 시기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가끔은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형제자매라는 이름으로 같은 생각, 엄격한 규칙,
개성에 대한 고려 없는 일방적 사랑이 반복된다면
동물학교 구성원들처럼 나를 둘러싼 공동체 구성원들도
각자가 받은 자기 재능과 은총을 살기는커녕,
서로에게 상처 주는 일을 반복하고 말 것입니다.
좋은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가 똑같은 일과 생각과 삶의 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더 유익한 것을 찾고, 공동체에 더 건설적인 것을 찾아
서로에게 더 잘 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하게 도와주는 것이겠죠.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가족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새로운 가치가 아닐까합니다.
어리석은 동물학교 학생들처럼 서로에 대한 이해보다 자기 주장에 갇힘으로써
자기 재능마저 볼품없는 것으로 만들고
결국에는 모두가 병든 몸과 마음으로 졸업장을 받는 어리석음은 우리에게 없어야겠죠.
우리 각자는 열심히 살았는데 상처만 입고
요리조리 빠져나가기 잘하는 미꾸라지가 1등이 되면 세상은 너무 초라하지 않겠습니까?
함께 사는 세상, 함께 사는 공동체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다면
나아가 서로에게 더 유익한 것, 공동체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함께 고민하지 않는다면,
이 아름다운 공동체를 주신 하느님이 너무 초라해지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는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겠습니까?“
예수님이 형제(자매)라고 불러주신 이 삶에서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삶을 초라하게 만들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니, 아니, 아니...”를 말하며 우리를 초라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그래, 괜찮아, 그래 괜찮아, 그래 한 번 같이 해 보자.”며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가족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줍시다. 아멘.
(사진 : 네이버블로그 "성원아이북랜드 덕양본부/큰나무샘과 작은 나무이야기"에서)

미국의 소설가 레오 부스칼리아가 쓴 “동물학교”(Animal School) 라는 책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토끼, 새, 물고기, 두더지, 오리, 개 등 여러 동물들이 모여 학교를 세우기로 하고
함께 모여 무슨 수업을 할지 시간표를 짰습니다.
토끼는 반드시 달리기 수업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동물들은 토끼의 완강함에 밀려 달리기 수업을 만들었습니다.
물고기는 수영 시간을 넣어야한다고 주장해서 수영 시간도 교과목에 들어갔습니다.
새는 비행 시간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그렇게 했고,
두더지는 땅파기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그의 의견도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 동물들이 각기 자신들이 잘하는 특별한 것들을
모두 수업 시간에 반영하는 것은 좋았는데,
그들은 졸업 학점을 따기 위해서는 그 수업들을 다 들어야 했습니다.
토끼는 달리기 수업에서 정말 뛰어났습니다. 아무도 그처럼 달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토끼는 비행 수업도 들어가야 했는데,
다른 동물들은 토끼를 부추키고는 나무위에서 밀며 “토끼야, 날아!”하며 응원했습니다.
이 불쌍한 토끼는 나무에서 하늘을 향해 풀쩍하고 뛰어 올랐지만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져 그만 깁스를 하고 말았습니다.
토끼는 더 이상 빨리 달리지 못해 달리기 수업에서도 겨우 70점을 받게 되었고,,
비행 수업에서는 정말 열심히 노력했지만 끝내 낙제를 겨우 면하면서 60점을 받았습니다.
새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어디든지 솜털처럼 가볍게 날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동물이 새에게 두더지처럼 땅에 굴을 파게 했고, 그 안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불쌍한 새는 날개와 부리를 다쳐서 더 이상 날지 못했습니다.
다른 동물들은 그런 새를 보고 기뻐하며 그에게 비행점수 70점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동물학교가 끝나고 모두가 졸업할 때가 되었을 때
동물들은 모두 몸에 상처를 입어서 누구는 목발을 집고 절룩거리고 있었고,
누구는 휠체어에 앉아서 졸업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상처입은 이 동물들 앞에서 누가 졸업사를 읽은지 아세요?
그것은 다름 아닌 뭔가 어리숙해 보이고, 요리조리 잘도 빠지던 미꾸라지였습니다.
미꾸라지는 놀랍게도 모든 면에서 평균점을 받아 다른 누구보다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에게 각자에게만 있는 유일한 재능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재능은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서만 주신 하느님의 선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을 위해 주신 하느님의 선물이고, 서로를 위해 주신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재능을 활용할 능력도 가지고 있고,
하느님의 사랑의 빛으로 우리 주위의 세상을 비출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받은 능력과 은총을 통해 서로에게 빛이 되어 주고 힘이 되어 주라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겠죠.
그런데 동물들이 자신의 재주는 뽐내면서도, 다른 이들의 재주는 시기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가끔은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형제자매라는 이름으로 같은 생각, 엄격한 규칙,
개성에 대한 고려 없는 일방적 사랑이 반복된다면
동물학교 구성원들처럼 나를 둘러싼 공동체 구성원들도
각자가 받은 자기 재능과 은총을 살기는커녕,
서로에게 상처 주는 일을 반복하고 말 것입니다.
좋은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가 똑같은 일과 생각과 삶의 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더 유익한 것을 찾고, 공동체에 더 건설적인 것을 찾아
서로에게 더 잘 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하게 도와주는 것이겠죠.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가족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새로운 가치가 아닐까합니다.
어리석은 동물학교 학생들처럼 서로에 대한 이해보다 자기 주장에 갇힘으로써
자기 재능마저 볼품없는 것으로 만들고
결국에는 모두가 병든 몸과 마음으로 졸업장을 받는 어리석음은 우리에게 없어야겠죠.
우리 각자는 열심히 살았는데 상처만 입고
요리조리 빠져나가기 잘하는 미꾸라지가 1등이 되면 세상은 너무 초라하지 않겠습니까?
함께 사는 세상, 함께 사는 공동체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다면
나아가 서로에게 더 유익한 것, 공동체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함께 고민하지 않는다면,
이 아름다운 공동체를 주신 하느님이 너무 초라해지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는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겠습니까?“
예수님이 형제(자매)라고 불러주신 이 삶에서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삶을 초라하게 만들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니, 아니, 아니...”를 말하며 우리를 초라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그래, 괜찮아, 그래 괜찮아, 그래 한 번 같이 해 보자.”며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가족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줍시다. 아멘.
(사진 : 네이버블로그 "성원아이북랜드 덕양본부/큰나무샘과 작은 나무이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