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읽는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본 큰 빛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있는 곳을 비추는 빛으로 소개합니다.
빛은 어둠을 가르는 표지이고,
어둠이 상징하는 죽음의 그림자에 새 생명의 힘을 전하는 희망의 표징입니다.
예수님은 어둠을 뚫고 세상의 빛이 되셨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신 예수님은 당신의 빛 안으로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회개하여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하느님 나라로의 초대는
사람들의 삶을 짓누르는 고통과 절망으로부터
새로운 삶을 향한 희망과 기쁨으로 초대하는 선포입니다.
빛은 어둠과 밝음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빛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어둠 속에 있을지 빛으로 나아갈지 결정해야 합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죽음의 그림자에 숨을지 아니면 생명의 기쁨을 살아갈지 결정해야 합니다.
사실 빛에는 그림자가 따릅니다.
우리가 빛을 향해 서면 우리 모습 뒤는 그림자를 만들죠.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빛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기의 얼굴을 가지고 사는 것이고,
빛 뒤에 숨어 그림자를 사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 아닌 다른 마음을 가지고 사는
거짓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빛은 빛을 사랑하는 사람과 빛이 아닌 어둠을 사랑하는 사람을 구분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갈등의 시작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빛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더 분명해지기 때문이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는 것은 해야 할 것이 분명해진다는 것이고,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지기에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자유를 주기보다 삶을 얽매이는 규율이 되고 제약이 되며,
자신의 마음에 갈등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아직 어둠이 남아있다는 것이겠죠.
우리는 예수님을 자유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분의 부르심을 받고 빛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 또한 자유인입니다.
자유, 특별히 영적 자유는 성령의 이끄심 따르는 길이기에
자신이 마주하는 일과 사람과 관계들 안에서 평화와 기쁨을 느끼고 전하는 사람입니다.
이 자유로움은 무엇보다도 일상을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더 기뻐하며 사는가 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당신은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고 밝히신 것처럼,
빛을 따르는 사람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심판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빛의 자녀는 자신을 사랑하고 공동체를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따뜻한 말로 위로하고 품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끔 우리 주위에는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질투하고 시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비하며 자책하고, 공동체의 허물을 습관처럼 들쑤셔 놓는 사람도 있고,
자기 뜻대로 공동체를 움직이고 휘두르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그것은 주님의 빛을 사는 작지만 가장 큰 빛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 그렇게 서로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사랑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 제 입이 당신을 노래하게 하소서. 아멘.”
(사진 : 지거쾨더 "Rosa en tronco"

오늘 우리가 읽는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본 큰 빛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있는 곳을 비추는 빛으로 소개합니다.
빛은 어둠을 가르는 표지이고,
어둠이 상징하는 죽음의 그림자에 새 생명의 힘을 전하는 희망의 표징입니다.
예수님은 어둠을 뚫고 세상의 빛이 되셨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신 예수님은 당신의 빛 안으로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회개하여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하느님 나라로의 초대는
사람들의 삶을 짓누르는 고통과 절망으로부터
새로운 삶을 향한 희망과 기쁨으로 초대하는 선포입니다.
빛은 어둠과 밝음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빛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어둠 속에 있을지 빛으로 나아갈지 결정해야 합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죽음의 그림자에 숨을지 아니면 생명의 기쁨을 살아갈지 결정해야 합니다.
사실 빛에는 그림자가 따릅니다.
우리가 빛을 향해 서면 우리 모습 뒤는 그림자를 만들죠.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빛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기의 얼굴을 가지고 사는 것이고,
빛 뒤에 숨어 그림자를 사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 아닌 다른 마음을 가지고 사는
거짓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빛은 빛을 사랑하는 사람과 빛이 아닌 어둠을 사랑하는 사람을 구분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갈등의 시작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빛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더 분명해지기 때문이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는 것은 해야 할 것이 분명해진다는 것이고,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지기에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자유를 주기보다 삶을 얽매이는 규율이 되고 제약이 되며,
자신의 마음에 갈등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아직 어둠이 남아있다는 것이겠죠.
우리는 예수님을 자유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분의 부르심을 받고 빛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 또한 자유인입니다.
자유, 특별히 영적 자유는 성령의 이끄심 따르는 길이기에
자신이 마주하는 일과 사람과 관계들 안에서 평화와 기쁨을 느끼고 전하는 사람입니다.
이 자유로움은 무엇보다도 일상을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더 기뻐하며 사는가 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당신은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고 밝히신 것처럼,
빛을 따르는 사람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심판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빛의 자녀는 자신을 사랑하고 공동체를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따뜻한 말로 위로하고 품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끔 우리 주위에는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질투하고 시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비하며 자책하고, 공동체의 허물을 습관처럼 들쑤셔 놓는 사람도 있고,
자기 뜻대로 공동체를 움직이고 휘두르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그것은 주님의 빛을 사는 작지만 가장 큰 빛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 그렇게 서로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사랑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 제 입이 당신을 노래하게 하소서. 아멘.”
(사진 : 지거쾨더 "Rosa en tron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