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 자신이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자신의 세례는 죄를 씻는 예식에 불과하지만, 진정한 세례는 성령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성사 안에서 물은 우리의 죄를 씻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물로 죄를 씻어내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하고 비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맑고 깨끗하게 비워진 영혼 위에 하느님이 자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온전한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 즉 성령이 우리 영혼의 비워진 자리에 들어오실 때 비로소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 당신의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 당신 마음에 드는 아들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서 마태오 복음은 명확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마태 3,15에 의하면,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주는 것을 주저하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예수님의 세례가 주는 참된 의미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들이 받고자 하는 세례는 세상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 놓을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세례를 받는다는 의미는 보다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것은 죄로부터 벗어난 우리의 맑고 비어진 영혼에 하느님께서 자리하도록 초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초대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과 하느님을 믿는 이들과 은총을 나누는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단 한 번 이루어지지만 또한 반복적으로 우리의 삶 안에서 재현되어야 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세례를 받은 뒤 기쁨과 평화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신앙생활 안에서 기쁨도 얻기 힘들고, 평화의 은총도 살지 못하고 있다고, 또한 기도의 기쁨도 느끼지 못한다고 고백합니다.
성체를 모시고 교회의 전례에 참여하고 또 성당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면서도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그런 우리들의 부족함에 대한 갈증에 대해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죄로부터 벗어나 비워둔 영혼의 자리에 하느님께서 자리하시도록 자신을 내어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이 되었다는 것이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의 시간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보다 진솔하고 정의로움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쁨과 평화가 진솔함과 정의로움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그 신앙은 곧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령으로 채우십시오. 그리고 하느님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하느님의 성령이 여러분과 함께 사랑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우리 자신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기쁨과 평화와 진실된 사랑과 정의를 갈망하는 은총이 손에 잡힐 것입니다.
"주님, 오늘 당신으로 행복해지고 싶은 저의 갈증을 당신 은총의 영으로 채워주소서. 아멘."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 자신이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자신의 세례는 죄를 씻는 예식에 불과하지만, 진정한 세례는 성령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성사 안에서 물은 우리의 죄를 씻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물로 죄를 씻어내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하고 비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맑고 깨끗하게 비워진 영혼 위에 하느님이 자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온전한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 즉 성령이 우리 영혼의 비워진 자리에 들어오실 때 비로소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 당신의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 당신 마음에 드는 아들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서 마태오 복음은 명확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마태 3,15에 의하면,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주는 것을 주저하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예수님의 세례가 주는 참된 의미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들이 받고자 하는 세례는 세상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 놓을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세례를 받는다는 의미는 보다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것은 죄로부터 벗어난 우리의 맑고 비어진 영혼에 하느님께서 자리하도록 초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초대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과 하느님을 믿는 이들과 은총을 나누는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단 한 번 이루어지지만 또한 반복적으로 우리의 삶 안에서 재현되어야 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세례를 받은 뒤 기쁨과 평화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신앙생활 안에서 기쁨도 얻기 힘들고, 평화의 은총도 살지 못하고 있다고, 또한 기도의 기쁨도 느끼지 못한다고 고백합니다.
성체를 모시고 교회의 전례에 참여하고 또 성당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면서도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그런 우리들의 부족함에 대한 갈증에 대해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죄로부터 벗어나 비워둔 영혼의 자리에 하느님께서 자리하시도록 자신을 내어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이 되었다는 것이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의 시간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보다 진솔하고 정의로움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쁨과 평화가 진솔함과 정의로움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그 신앙은 곧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령으로 채우십시오. 그리고 하느님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하느님의 성령이 여러분과 함께 사랑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우리 자신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기쁨과 평화와 진실된 사랑과 정의를 갈망하는 은총이 손에 잡힐 것입니다.
"주님, 오늘 당신으로 행복해지고 싶은 저의 갈증을 당신 은총의 영으로 채워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