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탄생 당시 로마 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막강한 힘에도 불구하고 로마 제국은 수많은 도전에 직면하며 점차 쇠퇴해 갔습니다. 로마 제국이 직면했던 많은 문제 중에는 게르만 부족의 침략과 같은 정치적 불안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가족 가치의 붕괴와 방탕의 확산 또한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교회는 매년 성탄절에 성가정을 우리의 모범으로 삼습니다. 소박한 마구간은 하느님께서 우리가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셨지만, 오직 가족만을 선택하셨음을 보여줍니다. 가족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사회가 그 근원에서 분리되면 마치 바다와 단절된 강처럼 메말라 버리고 진흙과 쓰레기로 가득 찬 강바닥만 남게 됩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삼위일체 하느님이시며, 삼위일체 공동체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그 둘이 자녀를 통해 셋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로써 인간 가족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복음서에는 가족에 대한 장황한 설명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말보다 더 값진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이 인간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도록 뜻하셨습니다.
복음에 따르면 그 가족은 가장 가난한 자리에서 태어났고, 권력자에 의해 목숨을 위협 받아 이집트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주민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복음은 말합니다. 마리아와 요셉과 예수님의 가정이 외적으로 가난하고, 쫒겨나고, 숨어 살아야 했지만, 그들은 천사의 말을 따라 살았다고 전합니다. 그 말은 그들은 외적으로 어렵게 살았지만 그 안에 믿음과 사랑과 희망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이 성탄시기에 성가정을 특별히 우리에게 기억하게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이미 천사의 말, 즉 하느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가정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가정 안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과 희망을 함께 살아가고자 노력할 때 비로소 예수님의 진정한 성탄, 성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성가정의 가치를 살아갈 수 있을까요? 무조건 사랑하고 무조건 믿고, 무조건 잘 될것이라고 희망하면 될까요?
무조건 믿고, 사랑하고, 희망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과 예수님이 삼위의 공동체를 표현한다는 의미는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를 존중한다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요셉이 마리아와 아들 예수를 존중하였듯이, 마리아가 남편 요셉과 아들을 존중하였듯이, 그리고 아들 예수님이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를 존중하였듯이 가족들 상호간에 상대방을 존중할 때 성가정은 하느님 사랑의 축복이 넘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은 곧 믿음이자 가족의 희망찬 미래입니다. 이 희망은 가족을 행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세상과 하느님마저도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하느님마저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느님마저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단순합니다. 그저 오늘 들은 복음 말씀을 오늘 실천하기 시작하면 됩니다. 오늘 성가정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서로를 믿음과 사랑과 희망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아멘.

예수님 탄생 당시 로마 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막강한 힘에도 불구하고 로마 제국은 수많은 도전에 직면하며 점차 쇠퇴해 갔습니다. 로마 제국이 직면했던 많은 문제 중에는 게르만 부족의 침략과 같은 정치적 불안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가족 가치의 붕괴와 방탕의 확산 또한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교회는 매년 성탄절에 성가정을 우리의 모범으로 삼습니다. 소박한 마구간은 하느님께서 우리가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셨지만, 오직 가족만을 선택하셨음을 보여줍니다. 가족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사회가 그 근원에서 분리되면 마치 바다와 단절된 강처럼 메말라 버리고 진흙과 쓰레기로 가득 찬 강바닥만 남게 됩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삼위일체 하느님이시며, 삼위일체 공동체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그 둘이 자녀를 통해 셋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로써 인간 가족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복음서에는 가족에 대한 장황한 설명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말보다 더 값진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이 인간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도록 뜻하셨습니다.
복음에 따르면 그 가족은 가장 가난한 자리에서 태어났고, 권력자에 의해 목숨을 위협 받아 이집트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주민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복음은 말합니다. 마리아와 요셉과 예수님의 가정이 외적으로 가난하고, 쫒겨나고, 숨어 살아야 했지만, 그들은 천사의 말을 따라 살았다고 전합니다. 그 말은 그들은 외적으로 어렵게 살았지만 그 안에 믿음과 사랑과 희망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이 성탄시기에 성가정을 특별히 우리에게 기억하게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이미 천사의 말, 즉 하느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가정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가정 안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과 희망을 함께 살아가고자 노력할 때 비로소 예수님의 진정한 성탄, 성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성가정의 가치를 살아갈 수 있을까요? 무조건 사랑하고 무조건 믿고, 무조건 잘 될것이라고 희망하면 될까요?
무조건 믿고, 사랑하고, 희망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과 예수님이 삼위의 공동체를 표현한다는 의미는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를 존중한다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요셉이 마리아와 아들 예수를 존중하였듯이, 마리아가 남편 요셉과 아들을 존중하였듯이, 그리고 아들 예수님이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를 존중하였듯이 가족들 상호간에 상대방을 존중할 때 성가정은 하느님 사랑의 축복이 넘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은 곧 믿음이자 가족의 희망찬 미래입니다. 이 희망은 가족을 행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세상과 하느님마저도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하느님마저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느님마저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단순합니다. 그저 오늘 들은 복음 말씀을 오늘 실천하기 시작하면 됩니다. 오늘 성가정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서로를 믿음과 사랑과 희망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