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오늘의 이 신비는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구원 의지가 어떻게
우리 신앙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삶 안에 드러나게 되었는지를 묵상하게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하느님과 마리아 사이에 이루어진 만남의 결과로 인해
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하느님의 사랑을 보게 되었고,
하느님의 존재와 그분의 의지를 이해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 첫 만남의 순간에 하느님과 마리아는 “어떤 모습의 만남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마리아는 처음 천사 가브리엘의 전언(傳言)을 들었을 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루가 1,34) 하며
하느님과 자신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에게 하느님은 자신과는 다른 존재였기에,
마리아는 그런 하느님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어떻게 만나야 하는 지도 알지 못했던 것이죠.
그런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는 하느님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늘이 땅을 덮어 하늘과 땅이 별개의 다른 존재가 아닌 사람이 사는 세상이 되었듯이,
하느님의 힘이 사람을 덮는다는 것은 하느님과 사람이 다른 존재가 아닌 하나인 존재,
즉 하느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을 자신과 다른 “너”와 “나”라는 별개의 존재로서 만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존재 안에 자신을 두어 하느님의 사람이 되었고,
하느님 역시 마리아의 존재 안에 당신을 두어 사람의 하느님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어떻게 만나고 있습니까?
탈출 33,11에서 모세가 하느님을 만나는 장면을 또한 떠올려 봅니다.
이때 모세와 하느님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사람들은
‘마치 친구처럼’ 만났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두렵기만 하던 하느님, 멀리 있다고만 느끼던 하느님을
모세가 ‘마치 친구처럼’ 만나고 있었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마리아는 모세가 하느님과 친구가 되어
‘너를 내가 받아들이고, 너도 나를 받아들이는’ 그런 정겨운 친구와의 만남을 넘어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사람이 되고, 하느님은 사람의 하느님이 되는
하느님과 사람의 새로운 관계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늘 하느님께 묻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그때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에게 묻겠죠?
그러면“나는 너에게 무엇이냐?”
...
“주님, 한 마음에 두 개의 ‘나’가 있을 수 없듯이, 제 안에는 오직 하느님 당신 한 분뿐이십니다. 아멘.”

오늘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오늘의 이 신비는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구원 의지가 어떻게
우리 신앙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삶 안에 드러나게 되었는지를 묵상하게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하느님과 마리아 사이에 이루어진 만남의 결과로 인해
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하느님의 사랑을 보게 되었고,
하느님의 존재와 그분의 의지를 이해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 첫 만남의 순간에 하느님과 마리아는 “어떤 모습의 만남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마리아는 처음 천사 가브리엘의 전언(傳言)을 들었을 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루가 1,34) 하며
하느님과 자신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에게 하느님은 자신과는 다른 존재였기에,
마리아는 그런 하느님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어떻게 만나야 하는 지도 알지 못했던 것이죠.
그런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는 하느님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늘이 땅을 덮어 하늘과 땅이 별개의 다른 존재가 아닌 사람이 사는 세상이 되었듯이,
하느님의 힘이 사람을 덮는다는 것은 하느님과 사람이 다른 존재가 아닌 하나인 존재,
즉 하느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을 자신과 다른 “너”와 “나”라는 별개의 존재로서 만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존재 안에 자신을 두어 하느님의 사람이 되었고,
하느님 역시 마리아의 존재 안에 당신을 두어 사람의 하느님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어떻게 만나고 있습니까?
탈출 33,11에서 모세가 하느님을 만나는 장면을 또한 떠올려 봅니다.
이때 모세와 하느님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사람들은
‘마치 친구처럼’ 만났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두렵기만 하던 하느님, 멀리 있다고만 느끼던 하느님을
모세가 ‘마치 친구처럼’ 만나고 있었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마리아는 모세가 하느님과 친구가 되어
‘너를 내가 받아들이고, 너도 나를 받아들이는’ 그런 정겨운 친구와의 만남을 넘어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사람이 되고, 하느님은 사람의 하느님이 되는
하느님과 사람의 새로운 관계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늘 하느님께 묻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그때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에게 묻겠죠?
그러면“나는 너에게 무엇이냐?”
...
“주님, 한 마음에 두 개의 ‘나’가 있을 수 없듯이, 제 안에는 오직 하느님 당신 한 분뿐이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