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TV 광고 중에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지금의 LG전자의 전신이었던 럭키금성이라는 회사의 TV 광고였습니다.
지금처럼 전자기기가 흔하지 않던 시절 TV나 냉장고는
한 번 사면 최소한 10년 동안은 써야하는 중요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한 번의 선택이 올바르지 못하면 오랜 동안 고생해야 합니다.
예전에 샀던 차가 그런 선택을 또한 묵상하게 합니다.
처음 차를 살 때 가난을 실천한다며 많은 옵션을 제외하고 차를 구입했습니다.
그때 뺀 옵션 중 하나는 차문 자동 개폐 장치였습니다.
자동차 문의 자동 개폐 장치를 뺐더니 그 뒤 10년 동안 차에서 내릴 때마다
일일이 차 문 4개의 잠근 장치를 일일이 열고 닫아야 했습니다.
혼자 탈 때는 그나마 상관없는데, 다른 사람들을 태우게 될 때는 바빴습니다.
운전석으로 먼저 들어가서 사방의 문으로 몸을 돌려 문을 열어야 하고,
내릴 때는 다시 사방의 문을 잠그고 내려야 했습니다.
마침내 10년이 지난 뒤 차를 바꾸어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수도회 형제들 모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최소한 자동차 문 잠그는 것만큼은 자동으로 합시다.” 라고요.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삶 안에서 선택은 한 번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우리는 공부해야 하고 연습해야 하며,
선택이 참된 나의 삶이 되도록 일상 안에서 그 선택을 살아내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라는 속담이 말하는 것처럼
매일의 작은 연습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매일의 선택과 연습 없이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회적(세속적)으로는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선택한다고 말하지만
신앙적으로는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선택은 자기가 주도권을 가지고 결정하려는 것이고,
응답은 하느님의 주도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에 기꺼이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있어 선택이라는 말보다 식별 또는 응답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에서 매일의 부르심에 따른 응답과 그에 따른 실천은
단지 우리의 10년을 좌우할 뿐만 아니라 때론 평생을 좌우하기도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을 드러내는 것,
즉 신앙의 신비를 우리, 의 일상생활 안에서 보고, 듣고 응답하며 살아가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적 성장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살고 있다는 소속감은 단지 아는 것의 문제가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는 문제입니다.
주님을 아는 것은 분명히 그분을 닮는 것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아는 것은 예수처럼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아는 것으로 삶의 현장에서 살아내는 것은 시간이 걸립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이 곳에 있도록 부르셨고, 우리가 이 곳에 있기로 결정했다면
이제는 시간을 들여 그 용기있는 결정을 매일의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선택과 실천도 때로 너무 답답하고 힘들게 느껴지곤 합니다.
어떤 때는 그 선택과 실천이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를 내기도 하고,
실패했다는 좌절감을 안겨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일상 안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우리가 응답하는 작은 실천들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신비를 체험하게 하며,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합니다.
다만 그것은 10년이 아닌 영원한 것을 향한 길이기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응답했습니다.
그리고 그 응답이 이미 우리의 평생을 좌우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응답이 참된 우리의 것이 되도록,
일상 안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신비를 매일의 또 다른 작은 실천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살기 위한 결심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 우리의 응답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달라고 기도합시다. 아멘.

어릴적 TV 광고 중에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지금의 LG전자의 전신이었던 럭키금성이라는 회사의 TV 광고였습니다.
지금처럼 전자기기가 흔하지 않던 시절 TV나 냉장고는
한 번 사면 최소한 10년 동안은 써야하는 중요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한 번의 선택이 올바르지 못하면 오랜 동안 고생해야 합니다.
예전에 샀던 차가 그런 선택을 또한 묵상하게 합니다.
처음 차를 살 때 가난을 실천한다며 많은 옵션을 제외하고 차를 구입했습니다.
그때 뺀 옵션 중 하나는 차문 자동 개폐 장치였습니다.
자동차 문의 자동 개폐 장치를 뺐더니 그 뒤 10년 동안 차에서 내릴 때마다
일일이 차 문 4개의 잠근 장치를 일일이 열고 닫아야 했습니다.
혼자 탈 때는 그나마 상관없는데, 다른 사람들을 태우게 될 때는 바빴습니다.
운전석으로 먼저 들어가서 사방의 문으로 몸을 돌려 문을 열어야 하고,
내릴 때는 다시 사방의 문을 잠그고 내려야 했습니다.
마침내 10년이 지난 뒤 차를 바꾸어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수도회 형제들 모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최소한 자동차 문 잠그는 것만큼은 자동으로 합시다.” 라고요.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삶 안에서 선택은 한 번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우리는 공부해야 하고 연습해야 하며,
선택이 참된 나의 삶이 되도록 일상 안에서 그 선택을 살아내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라는 속담이 말하는 것처럼
매일의 작은 연습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매일의 선택과 연습 없이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회적(세속적)으로는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선택한다고 말하지만
신앙적으로는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선택은 자기가 주도권을 가지고 결정하려는 것이고,
응답은 하느님의 주도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에 기꺼이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있어 선택이라는 말보다 식별 또는 응답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에서 매일의 부르심에 따른 응답과 그에 따른 실천은
단지 우리의 10년을 좌우할 뿐만 아니라 때론 평생을 좌우하기도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을 드러내는 것,
즉 신앙의 신비를 우리, 의 일상생활 안에서 보고, 듣고 응답하며 살아가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적 성장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살고 있다는 소속감은 단지 아는 것의 문제가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는 문제입니다.
주님을 아는 것은 분명히 그분을 닮는 것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아는 것은 예수처럼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아는 것으로 삶의 현장에서 살아내는 것은 시간이 걸립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이 곳에 있도록 부르셨고, 우리가 이 곳에 있기로 결정했다면
이제는 시간을 들여 그 용기있는 결정을 매일의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선택과 실천도 때로 너무 답답하고 힘들게 느껴지곤 합니다.
어떤 때는 그 선택과 실천이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를 내기도 하고,
실패했다는 좌절감을 안겨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일상 안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우리가 응답하는 작은 실천들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신비를 체험하게 하며,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합니다.
다만 그것은 10년이 아닌 영원한 것을 향한 길이기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응답했습니다.
그리고 그 응답이 이미 우리의 평생을 좌우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응답이 참된 우리의 것이 되도록,
일상 안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신비를 매일의 또 다른 작은 실천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살기 위한 결심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 우리의 응답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달라고 기도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