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5,34)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2025-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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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공생활 시기에 3번의 중요한 저녁 만찬을 가지셨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마태오 복음을 중심으로 본다면

우리가 잘 아는 마태 26,17-30의 제자들과의 최후만찬,

그리고 14,13-21의 5천명을 먹이신 이야기,

그리고 오늘 읽는 15,29-37의 4천명을 먹이신 이야기, 세 가지입니다.

 

앞 뒤 문맥을 고려할 때 5천명을 먹이신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여정의 끝에 만난 이들로 유대인들이 주 대상이었고,

4천명을 먹이신 이야기의 주 대상은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

즉 이스라엘 밖을 다녀오던 여정 끝에 만난 이들로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은 제자들과 나누었던 저녁식사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누는 이 세 번의 저녁만찬은 모두 당신의 선교 여정 끝에 이루어집니다.

즉, 갈릴래아 선교 여정, 이방인 지역 선교 여정,

그리고 당신의 공생활의 선교 여정의 끝에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나누는 식사였습니다.

빵의 나눔이라는 상징을 통해 제자, 유대인, 이방인 모두를

그리스도를 따르는 새로운 삶의 원천에로 초대합니다.

 

특히 오늘 복음에서 눈여겨보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 안에서 영적 위안을 얻은 사람들의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사흘 동안 그분 곁에 머물며 영적 위안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과 오랫동안 함께께하며 제자들과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영적 위안을 받았지만

여전히 이 은총 현실화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영적 위로와 은총을 자기 만족 혹은 자기 소유로만 가져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 말씀 ,사랑의 체험 안에서 얻은 넘치는 기쁨과 위안을

여전히 자기만족의 전유물 여기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척박한 광야에서 살고 있고,

여전히 고통스럽고 상처 가득한 삶의 현장(공동체)에 있다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겠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묻습니다.

“너희에게 빵이 몇 개가 있느냐?”

다시 말해, “지금의 너는 무엇을 시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죠.

 

제자들이 빵 “일곱 개가 있고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데 그것은,

“지금은 나 먹을 것 밖에 없습니다.

겨우 제가 이 광야에서 살아남을 힘 밖에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강변하는 데, 예수님은 거기에서도 시작할 수 있다며 우리를 이끕니다.

 

사람들은 쉽게 자기중심적으로 변합니다.

상처 받고 아픔을 당하면 더욱 자기 방어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변합니다.

다른 사람의 불편함이나 상처와 소외와 두려움을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상처받은 이들이 모인 곳이 더 시끄럽고 공격적이고 폭력적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 두려움과 소외와 이기적인 광야의 삶,

헐벗고 배고픈 광야의 삶에서 벗어나는 길에서 그리스도를 사는 길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우리 자신은 너무 힘들고 아파고 무미건조하기까지 해서 지옥 같은 광야처럼 느끼겠지만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를 살아갈 3일, 즉 부활을 살아갈 3일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영적 위안과 은총을 충만하게 받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시작하면 됩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세상에서 하시려는 구원의 시간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전히 하늘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고 기대하며 하늘만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가진 작은 은총, 영적 위안들을 감사와 사랑의 나눔으로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공동체의 삶은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이 아닙니다.

우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에 이르기 위해 오늘 이 척박한 광야에서 예수님과 함께

빵의 기적을 이루어 나가는 예수님 사랑의 동반자, 협력자입니다.

 

정작 사흘 동안이나 꼬박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온갖 영적 유산을 다 듣고도 여전히 하느님의 길을 찾아 광야를 헤맨다면

그것은 영성 수집가, 또는 영적 떠돌이인 영적 유민으로 살아가는 것이겠죠.

그에게 하느님을 찾아 나서는 길, 그리고 그가 있는 공동체는

언제나 그를 지치게 하고, 상처 입히고 아프게 할 뿐이고,

그곳에서는 늘 불안과 두려움과 메마름만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열심히 신앙(수도)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는데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한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상처에 아파하고 일어서기 싫고, 공동체 형제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당신의 친밀한 사랑과 많은 은총들이

여전히 자기 내면에 갇혀 나오지 못해, 숨쉬지 못해, 살아 움직이지 못해

얼마나 슬픈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광야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내 안에 사랑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꺼내 쓰세요.

그러면 많아집니다.

내게 상처주고 고통 주는 사람들에게 주고 싶지 않겠지만

예수님은 네가 행복해질려면 광야에서 풍요로운 기쁨으로 살려면 꺼내 쓰라고 요구합니다.

 

우리의 상처와 아픔과 두려움과 불안을 치유하는 힘,

그것은 지금 사랑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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