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생각에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 가장 찾아야 할 은총은 평화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 눈이 닿는 모든 곳에,
다툼이 있고, 싸움이 있고, 미움과 테러와 전쟁이 있습니다.
이런 다툼과 싸움과 미움과 전쟁은
우리의 가족들 안에도 있고, 공동체에도 있고, 친척들 가운데도 있고,
우리가 일하는 곳에도 있고, 우리가 사는 나라와 세상의 다른 나라에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교회 공동체와 우리 수도 공동체에도 있습니다.
평화의 부재는 분열을 가져오고, 소외를 가져오고, 고통을 가져옵니다.
평화는 대림과 성탄시기 동안에 계속되는 주제입니다.
이 주제를 성찰하도록
우리는 오늘 제 1 독서에 이사야 예언자의 평화에 관한 시를 읽었습니다.
늑대와 새끼 양 사이에 이루어지는 평화,
어린이와 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평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신기한 이미지로 이사야는
정의와 창조의 아름다움으로 돌아가게 하는 메시아의 손길을 느끼게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이사야 예언서는 과연 이런 게 가능한가? 하는 의문과 함께,
진정한 평화란 무엇인가를 깊이 성찰하게 합니다.
그런 평화가 가능한 것일까요?
누구나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셨다고 하지만 여전히 멀리 계신 것 같고,
이사야 예언자의 꿈같은 이야기는 영원히 꿈같은 이야기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그러한 생각들은
평화를 위해 일하는 데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탄생은 고통스런 과정입니다.
그리고 평화의 탄생 역시 쉽지 않습니다.
평화가 이렇게 어려운 어떤 것으로 등장하는 이유 하나는
인간의 인격에 대한 존중의 부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황 베네딕도 16세는 인간의 인격을 평화의 심장이라고 부르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인격을 존중하는 것은 평화를 증진하는 것이고, 평화는 건설하는 것이며,
그것은 진정한 통합된 휴머니즘을 만드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평화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헌신하도록 하는 부르심입니다.
그것은 모든 이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일상에서 연습해 나갈 때,
우리는 “세계 평화의 건설”이라던가,
아니면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이 땅에”라는 거창한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인간의 권리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커다란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평화의 사도가 된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 내 곁의 한 사람 한 사람을 한 인격으로 존중하는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자도 소도, 늑대도 새끼 양도, 어린이도 살무사도 같이 있지만 서로 해를 끼치지 않듯이,
우리 안에 있는 다양성도 우리를 해치지 않는 것을 꿈꾸는 것이
꿈으로 끝나서야 되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평화의 사도로 불리움 받지만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렇다면 화해의 중재자로 불린 우리 신앙인, 선교사들은 어떨까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내가 평화와 화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멀리서가 아니라 먼저 우리 주변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해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참조 : Sabbath 2008, written by Fr. Rudy Horst, 2th, December
제 생각에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 가장 찾아야 할 은총은 평화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 눈이 닿는 모든 곳에,
다툼이 있고, 싸움이 있고, 미움과 테러와 전쟁이 있습니다.
이런 다툼과 싸움과 미움과 전쟁은
우리의 가족들 안에도 있고, 공동체에도 있고, 친척들 가운데도 있고,
우리가 일하는 곳에도 있고, 우리가 사는 나라와 세상의 다른 나라에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교회 공동체와 우리 수도 공동체에도 있습니다.
평화의 부재는 분열을 가져오고, 소외를 가져오고, 고통을 가져옵니다.
평화는 대림과 성탄시기 동안에 계속되는 주제입니다.
이 주제를 성찰하도록
우리는 오늘 제 1 독서에 이사야 예언자의 평화에 관한 시를 읽었습니다.
늑대와 새끼 양 사이에 이루어지는 평화,
어린이와 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평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신기한 이미지로 이사야는
정의와 창조의 아름다움으로 돌아가게 하는 메시아의 손길을 느끼게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이사야 예언서는 과연 이런 게 가능한가? 하는 의문과 함께,
진정한 평화란 무엇인가를 깊이 성찰하게 합니다.
그런 평화가 가능한 것일까요?
누구나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셨다고 하지만 여전히 멀리 계신 것 같고,
이사야 예언자의 꿈같은 이야기는 영원히 꿈같은 이야기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그러한 생각들은
평화를 위해 일하는 데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탄생은 고통스런 과정입니다.
그리고 평화의 탄생 역시 쉽지 않습니다.
평화가 이렇게 어려운 어떤 것으로 등장하는 이유 하나는
인간의 인격에 대한 존중의 부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황 베네딕도 16세는 인간의 인격을 평화의 심장이라고 부르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인격을 존중하는 것은 평화를 증진하는 것이고, 평화는 건설하는 것이며,
그것은 진정한 통합된 휴머니즘을 만드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평화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헌신하도록 하는 부르심입니다.
그것은 모든 이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일상에서 연습해 나갈 때,
우리는 “세계 평화의 건설”이라던가,
아니면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이 땅에”라는 거창한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인간의 권리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커다란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평화의 사도가 된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 내 곁의 한 사람 한 사람을 한 인격으로 존중하는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자도 소도, 늑대도 새끼 양도, 어린이도 살무사도 같이 있지만 서로 해를 끼치지 않듯이,
우리 안에 있는 다양성도 우리를 해치지 않는 것을 꿈꾸는 것이
꿈으로 끝나서야 되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평화의 사도로 불리움 받지만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렇다면 화해의 중재자로 불린 우리 신앙인, 선교사들은 어떨까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내가 평화와 화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멀리서가 아니라 먼저 우리 주변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해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참조 : Sabbath 2008, written by Fr. Rudy Horst, 2th, Decem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