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5,27-33 / 요한3,31-36>
우리는 각자가 배움과 경험을 통해 확신하는 바가 있습니다. 이것이 대화와 나눔을 통해 서로 소통될 때,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배움과 경험을 통해 올바른 방향을 찾는 데 도움을 받곤 하지요. 그리고 이미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 사이에서의 나눔과 소통은, 이전에는 부분적으로만 알았던 것들을 보다 통합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풍요로움을 체험케 해줍니다. 이때 우리는 그 배움과 경험을 경륜과 지혜라는 말로 부를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반면, 소통되지 않는 체험, 그러니까 나만의 생각으로 굳어진 배움과 경험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는 지혜가 아니라 선입견이나 편견이라는 말로 표현되곤 합니다.
결국, 얼마나 내 생각에 대해 개방성을 지니고 있는지의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니까, 내 생각과 견해가 부분적으로만 옳을 수 있다고 인정하고, 다른 의견들을 통해 내 생각을 기꺼이 보완할 마음이 있는지. 내 생각이 나에게만 해당하는 진리라서, 전체의 선익을 위해 양보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 역시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지. 이렇듯 나의 생각과 견해를 개방하고, 또 끊임없이 통합의 길을 모색할 때, 그때 우리는 더 큰 진리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부분적인 진리에 매몰된 이들이 소통을 거부함으로써 더 큰 진리로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목격 증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지요. 하지만 대사제들은 그 증언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증언하는 입을 막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진리의 단편적인 조각을 지키기 위해 전체를 보려 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보여줍니다. 복음이 말하듯,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하늘에서 오시는 분이 모든 것 위에 계심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배움과 경험, 견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한 마디로, 땅에 속하여 부분적으로만 진리를 보는 이들이 진리 자체이신 분을 보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 소통의 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마치 돌무덤에서 돌문을 굴려 입구를 열었듯이, 꽉 닫힌 문을 넘어 부활하신 주님께서 거침없이 들어오시듯이, 그렇게 외부와의 창을 우리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때 비로소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과 공감할 수 있게 되고, 열린 지성을 통해서는 통합적인 방안을 함께 모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 열린 의지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방향으로 함께 투신하기로 결의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각자의 다른 증언들을 진리의 다른 조각으로 인정하고 통합해 나갈 때, 그때 진정 우리는 참 진리를 볼 수 있게 된다고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개방성을 지니고 대화를 통해 참 진리로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생각과 마음과 의지에 창문을 내고, 이를 통해 서로가 소통하고 통합해 나갈 수 있는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사도5,27-33 / 요한3,31-36>
우리는 각자가 배움과 경험을 통해 확신하는 바가 있습니다. 이것이 대화와 나눔을 통해 서로 소통될 때,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배움과 경험을 통해 올바른 방향을 찾는 데 도움을 받곤 하지요. 그리고 이미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 사이에서의 나눔과 소통은, 이전에는 부분적으로만 알았던 것들을 보다 통합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풍요로움을 체험케 해줍니다. 이때 우리는 그 배움과 경험을 경륜과 지혜라는 말로 부를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반면, 소통되지 않는 체험, 그러니까 나만의 생각으로 굳어진 배움과 경험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는 지혜가 아니라 선입견이나 편견이라는 말로 표현되곤 합니다.
결국, 얼마나 내 생각에 대해 개방성을 지니고 있는지의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니까, 내 생각과 견해가 부분적으로만 옳을 수 있다고 인정하고, 다른 의견들을 통해 내 생각을 기꺼이 보완할 마음이 있는지. 내 생각이 나에게만 해당하는 진리라서, 전체의 선익을 위해 양보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 역시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지. 이렇듯 나의 생각과 견해를 개방하고, 또 끊임없이 통합의 길을 모색할 때, 그때 우리는 더 큰 진리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부분적인 진리에 매몰된 이들이 소통을 거부함으로써 더 큰 진리로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목격 증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지요. 하지만 대사제들은 그 증언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증언하는 입을 막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진리의 단편적인 조각을 지키기 위해 전체를 보려 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보여줍니다. 복음이 말하듯,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하늘에서 오시는 분이 모든 것 위에 계심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배움과 경험, 견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한 마디로, 땅에 속하여 부분적으로만 진리를 보는 이들이 진리 자체이신 분을 보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 소통의 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마치 돌무덤에서 돌문을 굴려 입구를 열었듯이, 꽉 닫힌 문을 넘어 부활하신 주님께서 거침없이 들어오시듯이, 그렇게 외부와의 창을 우리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때 비로소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과 공감할 수 있게 되고, 열린 지성을 통해서는 통합적인 방안을 함께 모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 열린 의지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방향으로 함께 투신하기로 결의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각자의 다른 증언들을 진리의 다른 조각으로 인정하고 통합해 나갈 때, 그때 진정 우리는 참 진리를 볼 수 있게 된다고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개방성을 지니고 대화를 통해 참 진리로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생각과 마음과 의지에 창문을 내고, 이를 통해 서로가 소통하고 통합해 나갈 수 있는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