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4,23-31 / 요한3,1-8>
지난 일주일간 수도회 어셈블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종신회원들이 모여서 함께 지난 3년을 평가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음 3년을 계획하고 결의하는 시간을 가졌지요. 이 시간은 객관적인 데이터와 경험을 바탕으로 서로 토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성령께서 우리 글라렛 선교사들을 어디로 이끌고 계시는지 함께 공동으로 식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셈블리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우리가 기억하고 기도로 가져갔던 것은, 하느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사야서의 말씀(이사55,8)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고 꾸중을 들었던 베드로의 모습을 경계하기 위해서였습니다.(마태23,16)
어셈블리의 역동을 보면서, 또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무엇이 우리를 이끌고 있는지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간에 내가 편안해지는 방향으로 이끌려지고 있는지, 아니면 물질적인 부분, 그러니까 재정적인 안정성이나 수익성의 기준에 따라 나와 공동체가 무언가를 결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외부에서 바라보고 평가하는 시선에 따라 우리 행동이 이끌려지고 있는지 말입니다. 만일 그러하다면 여전히 우리는 위로부터 태어나지 못한, 그러니까 육에서 태어난 육의 모습을 지닌 사람들로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 우리 생각과 말과 행동이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이끌려질 때, 또 복음의 정신에 따라 내가 자유롭게 움직이게 될 때, 그때 우리는 불고 싶은 데로 부는 바람처럼, 영에서 태어난 이들의 모습을 지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육과 영을 철저히 구분하는 이원론자들처럼 살자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땅에 발을 딛고 있으니, 육의 삶을 돌보지 않는 것도 옳지 않겠지요. 하지만, 우리를 주로 이끄는 것이 무엇인지 주의 깊게 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왜냐면 우리를 이끄는 그 무언가에 나를 맡겨 이끌려 가다 보면, 결국 우리는 그 대상과 하나가 될 테니 말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이기도 하지요. 성녀께서는 종종 이렇게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오, 성령님, 제 마음에 오시어 당신의 힘으로 저의 마음을 참 하느님이신 당신께 이끄시고 놀라운 사랑으로 저를 받아주소서.” 불과 33살에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가타리나 성녀가 신비가, 중재자, 신학자, 설교자, 간호사, 교회 박사라는 다양한 칭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렇듯 늘 성령께 이끌려지는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국집에 가더라도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 우리 삶입니다. 일어설지 앉아있을지, 이야기할지 침묵을 지킬지, 예라고 할지 아니라고 할지, 그렇게 우리는 일상 안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식별하고 선택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내 마음을 이끌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성찰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와 내 공동체가 참으로 성령께 이끌려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기도로 청하도록 합시다.
<사도4,23-31 / 요한3,1-8>
지난 일주일간 수도회 어셈블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종신회원들이 모여서 함께 지난 3년을 평가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음 3년을 계획하고 결의하는 시간을 가졌지요. 이 시간은 객관적인 데이터와 경험을 바탕으로 서로 토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성령께서 우리 글라렛 선교사들을 어디로 이끌고 계시는지 함께 공동으로 식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셈블리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우리가 기억하고 기도로 가져갔던 것은, 하느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사야서의 말씀(이사55,8)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고 꾸중을 들었던 베드로의 모습을 경계하기 위해서였습니다.(마태23,16)
어셈블리의 역동을 보면서, 또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무엇이 우리를 이끌고 있는지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간에 내가 편안해지는 방향으로 이끌려지고 있는지, 아니면 물질적인 부분, 그러니까 재정적인 안정성이나 수익성의 기준에 따라 나와 공동체가 무언가를 결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외부에서 바라보고 평가하는 시선에 따라 우리 행동이 이끌려지고 있는지 말입니다. 만일 그러하다면 여전히 우리는 위로부터 태어나지 못한, 그러니까 육에서 태어난 육의 모습을 지닌 사람들로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 우리 생각과 말과 행동이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이끌려질 때, 또 복음의 정신에 따라 내가 자유롭게 움직이게 될 때, 그때 우리는 불고 싶은 데로 부는 바람처럼, 영에서 태어난 이들의 모습을 지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육과 영을 철저히 구분하는 이원론자들처럼 살자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땅에 발을 딛고 있으니, 육의 삶을 돌보지 않는 것도 옳지 않겠지요. 하지만, 우리를 주로 이끄는 것이 무엇인지 주의 깊게 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왜냐면 우리를 이끄는 그 무언가에 나를 맡겨 이끌려 가다 보면, 결국 우리는 그 대상과 하나가 될 테니 말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이기도 하지요. 성녀께서는 종종 이렇게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오, 성령님, 제 마음에 오시어 당신의 힘으로 저의 마음을 참 하느님이신 당신께 이끄시고 놀라운 사랑으로 저를 받아주소서.” 불과 33살에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가타리나 성녀가 신비가, 중재자, 신학자, 설교자, 간호사, 교회 박사라는 다양한 칭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렇듯 늘 성령께 이끌려지는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국집에 가더라도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 우리 삶입니다. 일어설지 앉아있을지, 이야기할지 침묵을 지킬지, 예라고 할지 아니라고 할지, 그렇게 우리는 일상 안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식별하고 선택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내 마음을 이끌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성찰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와 내 공동체가 참으로 성령께 이끌려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기도로 청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