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65,17-21 / 요한4,43-54>
카파르나움에서 카나까지는 26km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복음에 등장하는 왕실 관리는 아들을 살리려고 반나절 이상 걸리는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왔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는 사랑하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그간 수많은 방법을 시도하고, 또 실패를 거듭했으리라 짐작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스라엘 변방에서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예수라는 예언자에게까지 온 것이겠지요. 더욱이 아들이 죽게 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니, 마지막 희망을 품고 예수님을 찾아온 한 아버지의 절박한 심정마저 느끼게 됩니다.
이 절박한 아버지의 심정에 예수님께서 연민으로 응답하십니다.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요한4,50)라고 말이지요.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그 왕실 관리를 보면서,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을 떠올리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당신께로 돌려놓으시려고 그렇게나 많은 예언자들을 보내시고, 이제 마지막으로 외아들까지 보내신 하느님의 마음 말입니다. 그래서 왕실 관리와 예수님과의 만남은, 한편으로 사람의 마음과 하느님의 마음이 만난 순간, 또 자녀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공감되는 순간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렇듯 마음과 마음이 만난 순간, 연민의 마음이 차오른 예수님께서는 왕실 관리의 아들을 고쳐주기로 마음먹으십니다. 그리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께서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었던 왕실 관리의 완고한 마음을 치유하시고, 그를 통해 이방인이었던 그의 집안이 모두 믿고 구원에 이르게까지 하십니다. 한 사람의 치유가 아닌 온 집안의 치유, 말 그대로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새로운 창조를 이루신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 새 하늘과 새 땅은 즐거움과 기쁨으로 가득하고, 또 모두가 충만한 생명을 얻어 누릴 것이라고 하시지요. 오늘 우리가 들은 요한복음의 두 번째 표징은 바로 그 약속의 구체적인 실현입니다. 특별히 오늘 복음은 이러한 창조가 하느님 편에서만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왕실 관리의 아들에 대한 사랑, 주님께 대한 희망, 말씀에 대한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약속과 더불어,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어우러진 왕실 관리의 응답, 그리고 마음과 마음의 만남을 통해 새 창조가 이루어졌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새로운 창조는 처음과 달리, 어쩌면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해나가야 하는 창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보내는 사순시기는 주님의 초대에 따라 새로운 창조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시기, 곧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고 부활하고자 노력하는 때입니다. 그러니 복음이 요청하는 바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또 마음으로부터 이 창조사업에 협력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이사65,17-21 / 요한4,43-54>
카파르나움에서 카나까지는 26km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복음에 등장하는 왕실 관리는 아들을 살리려고 반나절 이상 걸리는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왔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는 사랑하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그간 수많은 방법을 시도하고, 또 실패를 거듭했으리라 짐작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스라엘 변방에서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예수라는 예언자에게까지 온 것이겠지요. 더욱이 아들이 죽게 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니, 마지막 희망을 품고 예수님을 찾아온 한 아버지의 절박한 심정마저 느끼게 됩니다.
이 절박한 아버지의 심정에 예수님께서 연민으로 응답하십니다.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요한4,50)라고 말이지요.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그 왕실 관리를 보면서,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을 떠올리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당신께로 돌려놓으시려고 그렇게나 많은 예언자들을 보내시고, 이제 마지막으로 외아들까지 보내신 하느님의 마음 말입니다. 그래서 왕실 관리와 예수님과의 만남은, 한편으로 사람의 마음과 하느님의 마음이 만난 순간, 또 자녀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공감되는 순간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렇듯 마음과 마음이 만난 순간, 연민의 마음이 차오른 예수님께서는 왕실 관리의 아들을 고쳐주기로 마음먹으십니다. 그리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께서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었던 왕실 관리의 완고한 마음을 치유하시고, 그를 통해 이방인이었던 그의 집안이 모두 믿고 구원에 이르게까지 하십니다. 한 사람의 치유가 아닌 온 집안의 치유, 말 그대로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새로운 창조를 이루신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 새 하늘과 새 땅은 즐거움과 기쁨으로 가득하고, 또 모두가 충만한 생명을 얻어 누릴 것이라고 하시지요. 오늘 우리가 들은 요한복음의 두 번째 표징은 바로 그 약속의 구체적인 실현입니다. 특별히 오늘 복음은 이러한 창조가 하느님 편에서만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왕실 관리의 아들에 대한 사랑, 주님께 대한 희망, 말씀에 대한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약속과 더불어,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어우러진 왕실 관리의 응답, 그리고 마음과 마음의 만남을 통해 새 창조가 이루어졌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새로운 창조는 처음과 달리, 어쩌면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해나가야 하는 창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보내는 사순시기는 주님의 초대에 따라 새로운 창조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시기, 곧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고 부활하고자 노력하는 때입니다. 그러니 복음이 요청하는 바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또 마음으로부터 이 창조사업에 협력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