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 사순 제4주일

2019-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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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5,9ㄱㄴ.10-12 / 2코린5,17-21 / 루카15,1-3.11ㄴ-32>


사순시기를 흔히 은혜로운 회개의 때라고 말합니다. 과연 이때 우리는 회개하고 통회함으로써 거룩하게 변화되는 여정을 걸어갑니다. 그래서 사순시기를 은혜롭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회개를 위해서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 첫 번째 단계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죄 없는 사람이 회개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올해 사순이 시작되기 바로 며칠 전에, 찻잔에 차를 마시다가 문득 잔에 금이 가 있음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깨진 금을 따라서 찻물이 스며든 것을 보면서 우리 영혼에 깨어진 부분에도 마치 찻물이 스며들 듯 하느님의 은총이 스며드는 것이구나 하는 묵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매끈하게 금 간 흔적 하나 없는 잔에는 찻물이 스며들 수가 없겠지요. 마찬가지로 만일 우리 영혼도 깨진 부분 하나 없이 완전하기만 하다면, 아마도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체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큰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루카15,29)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고 하니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을 만큼 열심히 살았다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이 큰아들은 작은아들과 달리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체험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신비를 보게 됩니다. 우리가 그토록 부끄러워하고, 아파하고, 감추고 싶어 하는 그 나약함과 죄가 바로 하느님 은총의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 영혼이 깨지고 금이 갔기에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분께서는 과연 성한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을, 그러니까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그러니 회개의 첫 단계는 죄를 짓는 것,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내가 죄인임을 주님 앞에서 인정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회개를 위한 두 번째 단계는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자기 앞으로 돌아올 재산을 받아 길을 떠난 작은아들은 가진 것을 하나씩 잃기 시작합니다. 재물과 옷가지를 잃어버리고, 명예를 잃어버리고, 급기야는 돼지와 함께 음식을 먹으면서 인간으로서의 품위마저 잃어버립니다. 다 잃어버리지요. 그런데 작은아들이 마지막까지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에 대한 기억, 자신이 아버지께 얼마나 사랑받았는지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을 더듬어서 작은아들은 아버지께 돌아갑니다. 우리 역시 이러한 기억들이 있지요. 조건 없이 용서해주시는 하느님 자비에 대한 기억. 이 기억이 우리에게 가장 큰 희망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다시 회개할 수 있게 되니 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했다면, 이제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가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희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절망의 끝에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일어서는 것이지요. 사실 이 부분이 회개의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회개라고 하면, 잘못을 인정하고 통회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회개가 되려면, 내가 잘못 가고 있었음을 깨닫는 것은 물론, 잘못에 대한 통회와, 다시는 가지 않겠다는 결심, 더 나아가 실제로 돌아서서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바꾸는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마치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있으면서, 그 사실을 알고 후회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회개도 잘못을 인정하고 후회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마치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를 갈아타야 올바른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있는 것처럼, 여태까지와 다르게 살기로 결심하고 거듭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작은아들이 돌아가서 아버지 품에 안기듯, 우리도 조건 없이 용서하시는 하느님을 만나야 합니다. 회개를 통해 받아들여지는 이 순간은 하느님과의 추억을 만드는 순간입니다. 복음에 명시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확신컨대 작은아들은 이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체험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아마도 작은아들은 이 기억 때문에 혹시라도 다시 집을 나가려 하다가도, 마음을 돌리게 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혹 나가더라도, 아버지 품 안에서의 기억이 작은아들을 결국 아버지께 다시 돌아오게 하겠지요. 이런 추억들이 하나둘씩 쌓이면서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사랑과 신뢰는 깊어지고, 둘은 점차 더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끝으로 회개의 마지막 단계는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용서받은 작은아들이 자라서 이제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처럼 조건 없이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언젠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루카6,36)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회개의 과정이 참으로 놀랍고 신비롭습니다. 분명 아버지를 떠나간 죄로부터 시작됐는데, 그 죄를 인정하고, 아버지를 기억하고, 아버지께 돌아가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고, 더 가까워지고, 마침내 아버지를 닮아가게 되니 말입니다. 이것이 아마도 우리 죄인들을 당신께로 모아들이시고, 당신의 사람으로 만들어가시는 하느님의 방법이라 여겨집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우리는 죄를 지어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우리가 참 비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또, 늘 같은 죄를 주님 앞에 말씀드리면서 송구스러울 때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죄들 때문에, 이 나약함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알게 되고, 그분을 닮아갑니다. 거룩하게 변화됩니다. 특별히 사순시기는 회개의 은총이 쏟아지는 시간입니다. 말하자면, 주님의 부활과 더불어 우리들의 부활을 준비하는 때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깨진 내 영혼을 실망스럽게 바라보기보다, 그 안에 스며들어올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며, 회개의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회개하는 작은 아들로, 다시 자비로운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화되는 여정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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