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 사순 제3주간 목요일

2019-03-28
조회수 515

성경에서 벙어리 이야기를 들을 될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육체적인 장애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사람의 답답한 상황에 연민의 마음을 갖게 되는가 하면, 기가 차고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힌 사람들의 당혹스러움과 또 너무 슬퍼서 할 말을 미처 찾지 못하는 사람들의 딱한 사정을 헤아려보게 되기도 합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속 시원하게 속에 있는 말을 꺼내지 못하는 그 답답함, 그리고 소통하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그 심정은 아마도 그 여느 것 못지않게 큰 고통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신 예수님의 기적은 무엇보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움에 대해 묵상하게 해줍니다.


그런가 하면, 벙어리 마귀는 누군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도록 완고한 마음을 갖게 하는 식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귀를 막아버리거나 말을 흘려듣게 하는 것이지요. 이럴 때 상대는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벙어리 취급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이 아니라, 말을 듣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벙어리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신 예수님의 기적은 또 한편으로 상대의 말을 귀담아듣고, 연민으로 품어주는 너그러움에 대해 묵상하게 해줍니다.


오늘 우리는 제1독서와 복음 안에서, 목을 뻣뻣이 세우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미 보여주신 표징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표징을 재차 요구하는 이들을 보게 됩니다. 이들은 비록 말을 할 수는 있었지만, 벙어리 마귀의 지배 아래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왜냐면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의 표징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분을 벙어리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지요. 마음을 무디게 가진 나머지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또 그분과 소통하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성경에서 벙어리를 뜻하는 “Kophos”라는 단어에는 사실 벙어리와 더불어 귀머거리라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신 예수님의 치유 사건은, 말하지 못하는 이들이 자유롭게 말하도록 하신 기적이면서, 동시에 듣지 못하는 이들을 듣게 하신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절되었던 이들이 서로 입과 귀, 그리고 마음을 열어 소통할 수 있게 하신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 독서와 복음이 사순 여정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묵상 거리를 주는 것 같습니다.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통, 특별히 당혹스럽고 슬퍼서 말문이 막힌 이들의 아픔, 또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완고함, 그리고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무뎌진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바라봄을 통해 회개하여 오늘 예수님의 기적을 우리 삶 안에서 재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목소리를 다시 얻고, 서로를 연민으로 바라보고,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따라갈 때, 우리가 부활로 한 발자국 더 다가서고,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서 완성되어 가는 것이라 믿습니다. 이러한 우리 여정을 충실히 걸어갈 수 있도록 이 시간 마음 모아 주님께 필요한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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