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2,1-5 / 로마10,9-18 / 마태28,16-20>
누군가 교황청에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만일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교회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교황청의 답변은 아주 명확했습니다. “만일 지능을 가진 외계 생명체가 발견된다면, 그들 역시 우리 교회의 선교 대상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하지요. 더 나아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만일 외계인이 찾아와 청한다면 그들에게 세례도 줄 수 있다고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 외계인이 존재할지, 또 그들이 가톨릭 신자가 되고 싶어 할지 사실 모르지만, 이를 통해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교회가 모든 피조물에게 선교하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전교주일을 맞아 미사 중에 듣게 되는 복음 말씀은 바로 이 지상 과제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28,19-20) 우리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이 직접적인 요청의 말씀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요청에 따라, 바오로 사도를 시작으로 수많은 선교사들이 믿지 않는 이들에게 파견되어 교회를 설립했던 것이지요.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가톨릭교회는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자생적으로 탄생한 교회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성장하면서 주문모 야고보 신부님을 비롯한 많은 선교사들이 입국했고, 신자들과 피땀을 함께 흘리면서 한국 교회가 발전하도록 도움을 주셨지요. 다시 말해서, 우리 역시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성장한 교회인 것입니다.
제가 선교를 통해 교회를 설립한다고 이야기를 드렸는데, 혹시라도 이 표현에 오해가 있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왜냐면 얼핏 듣기에 이 말은 마치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 선교라고 느끼게 되기 때문이지요. 달리 말하면 더 많은 성당을 짓고, 그 성당에 더 많은 사람들이 오도록 하는 것이 선교라고 잘못 이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해하면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그러니까 주객이 전도된 말이 되어 버립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우리는 교회를 위해서 선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선교하도록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셨다고 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우리 교회를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선교에 대한 우리의 자세도 달라집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서, 우리 본당을 통해서, 또 나 자신을 통해서 복음이 선포되도록 노력하게 될 테니 말입니다. 그 때, 본당의 모든 활동들과 우리들의 삶이 달라지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예수님의 모습을 체험하고, 하느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알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유로 우리 교회는 선교의 첫 번째 대상, 달리 말하면 복음화의 첫 번째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지금 내 자리에서 잘살고 있는지, 그래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에 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대상에는 저를 비롯한 모든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그리고 전 세계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이 포함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회개라고 이야기해도 틀리지 않겠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맛 들이고, 거기에 젖어 들고, 그에 따라 변화된 삶을 사는 것, 바로 그것이 첫 번째 선교 대상인 나 자신을 복음화하는 과정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대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 다시 말해서 우리 교회입니다. 내가 먼저 회개하고 복음화된 후에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지요. 한편으로는 서로가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일 수도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교회가 얼마나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신자재교육이라든가 피정, 특강 등의 형태일 수도 있겠고, 본당의 소공동체나 신심 단체 활동을 통해서도 이러한 복음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본당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한 선교가 되는 셈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선교, 곧 믿지 않는 비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복음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교회는 앞서 말씀드린 첫 번째와 두 번째 대상에게 하는 복음화가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늘 이야기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와 관련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다고 합니다. “남들에게 불붙이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이미 당신 안에 그것이 불타고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신앙의 길로 초대하고자 한다면, 먼저 내가 그 신앙을 맛보고 사랑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라 여겨집니다. 물론 이렇게 못한다고 해서 비신자 선교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내가 전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알고 체험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이야기이지요.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제2의 그리스도라 불릴 정도로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른 위대한 선교사였습니다. 그분은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가난한 삶을 살며 순회 설교를 통해 복음을 전하셨는데,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고 전해집니다. “늘 복음을 전하십시오. 하지만 꼭 필요할 때만 말하십시오.” 전교주일을 보내는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단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해야 함을, 다시 말해서 선포와 증거가 함께 가야 함을 잘 설명해주는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복음화란 공허하게 말만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우리 교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또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이 모든 것이 삶으로 드러나는 것이어야 하니 말입니다.
전교주일을 지내는 오늘, 무엇보다 우리 한국 교회에 복음을 전해 준 선교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되새기고, 또 낯선 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모든 선교사들을 기억하고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우리도 마찬가지로 복음을 선포하도록 파견되었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이 선포는 무엇보다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서, 우리 그리스도교 형제자매들에게, 또 온 세상을 향해 열려 있어야겠지요. 이를 통해 우리 교회가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보다 잘 보여주고, 또 예수님의 향기를 아름답게 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자신과 교회에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합시다. 아멘.
<이사2,1-5 / 로마10,9-18 / 마태28,16-20>
누군가 교황청에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만일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교회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교황청의 답변은 아주 명확했습니다. “만일 지능을 가진 외계 생명체가 발견된다면, 그들 역시 우리 교회의 선교 대상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하지요. 더 나아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만일 외계인이 찾아와 청한다면 그들에게 세례도 줄 수 있다고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 외계인이 존재할지, 또 그들이 가톨릭 신자가 되고 싶어 할지 사실 모르지만, 이를 통해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교회가 모든 피조물에게 선교하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전교주일을 맞아 미사 중에 듣게 되는 복음 말씀은 바로 이 지상 과제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28,19-20) 우리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이 직접적인 요청의 말씀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요청에 따라, 바오로 사도를 시작으로 수많은 선교사들이 믿지 않는 이들에게 파견되어 교회를 설립했던 것이지요.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가톨릭교회는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자생적으로 탄생한 교회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성장하면서 주문모 야고보 신부님을 비롯한 많은 선교사들이 입국했고, 신자들과 피땀을 함께 흘리면서 한국 교회가 발전하도록 도움을 주셨지요. 다시 말해서, 우리 역시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성장한 교회인 것입니다.
제가 선교를 통해 교회를 설립한다고 이야기를 드렸는데, 혹시라도 이 표현에 오해가 있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왜냐면 얼핏 듣기에 이 말은 마치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 선교라고 느끼게 되기 때문이지요. 달리 말하면 더 많은 성당을 짓고, 그 성당에 더 많은 사람들이 오도록 하는 것이 선교라고 잘못 이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해하면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그러니까 주객이 전도된 말이 되어 버립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우리는 교회를 위해서 선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선교하도록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셨다고 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우리 교회를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선교에 대한 우리의 자세도 달라집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서, 우리 본당을 통해서, 또 나 자신을 통해서 복음이 선포되도록 노력하게 될 테니 말입니다. 그 때, 본당의 모든 활동들과 우리들의 삶이 달라지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예수님의 모습을 체험하고, 하느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알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유로 우리 교회는 선교의 첫 번째 대상, 달리 말하면 복음화의 첫 번째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지금 내 자리에서 잘살고 있는지, 그래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에 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대상에는 저를 비롯한 모든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그리고 전 세계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이 포함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회개라고 이야기해도 틀리지 않겠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맛 들이고, 거기에 젖어 들고, 그에 따라 변화된 삶을 사는 것, 바로 그것이 첫 번째 선교 대상인 나 자신을 복음화하는 과정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대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 다시 말해서 우리 교회입니다. 내가 먼저 회개하고 복음화된 후에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지요. 한편으로는 서로가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일 수도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교회가 얼마나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신자재교육이라든가 피정, 특강 등의 형태일 수도 있겠고, 본당의 소공동체나 신심 단체 활동을 통해서도 이러한 복음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본당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한 선교가 되는 셈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선교, 곧 믿지 않는 비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복음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교회는 앞서 말씀드린 첫 번째와 두 번째 대상에게 하는 복음화가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늘 이야기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와 관련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다고 합니다. “남들에게 불붙이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이미 당신 안에 그것이 불타고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신앙의 길로 초대하고자 한다면, 먼저 내가 그 신앙을 맛보고 사랑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라 여겨집니다. 물론 이렇게 못한다고 해서 비신자 선교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내가 전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알고 체험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이야기이지요.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제2의 그리스도라 불릴 정도로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른 위대한 선교사였습니다. 그분은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가난한 삶을 살며 순회 설교를 통해 복음을 전하셨는데,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고 전해집니다. “늘 복음을 전하십시오. 하지만 꼭 필요할 때만 말하십시오.” 전교주일을 보내는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단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해야 함을, 다시 말해서 선포와 증거가 함께 가야 함을 잘 설명해주는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복음화란 공허하게 말만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우리 교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또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이 모든 것이 삶으로 드러나는 것이어야 하니 말입니다.
전교주일을 지내는 오늘, 무엇보다 우리 한국 교회에 복음을 전해 준 선교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되새기고, 또 낯선 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모든 선교사들을 기억하고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우리도 마찬가지로 복음을 선포하도록 파견되었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이 선포는 무엇보다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서, 우리 그리스도교 형제자매들에게, 또 온 세상을 향해 열려 있어야겠지요. 이를 통해 우리 교회가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보다 잘 보여주고, 또 예수님의 향기를 아름답게 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자신과 교회에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