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제34,11-16 / 로마5,5ㄴ-11 / 루카15,3-7>
아흔아홉 마리를 놓아둔 채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나서는 목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어렸을 때 오늘 복음 말씀을 들으면서 떠올렸던 목자의 마음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한 마리도 잃지 않고 주어진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는 책임감, 광야에 남겨지는 아흔아홉 마리 양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 그런가 하면 잘 따라오지 않고 아마도 딴전을 피웠을 그 한 마리에 대한 원망의 마음도 떠올렸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나이가 들고 다양한 사랑의 역동을 체험하면서 떠올리게 되는 목자의 마음은 이전과 많이 다릅니다. 사랑하면 바보같이 눈이 멀어 그 대상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처럼, 그렇게 잃어버린 한 마리 양으로 가득 차 있을 목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된 때문이지요. 사라진 한 마리 양이 병이 들어 뒤처지지는 않았을까, 찔레 가시에 흰 털가죽이 찢겼거나, 가시덤불에 걸려 옴짝달싹 못 하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사나운 맹수에 둘러싸여 두려움에 떨고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목자는 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마음 안에는 숫자를 채워야 한다는 책임이나 의무감, 혹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그 양에 대한 원망이 들어설 자리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지요.
양을 찾아 떠나는 목자의 마음이 그런 것 같습니다. 책임감이나 의무감이 아니라, 또 잘잘못을 따지려는 마음이 아니라, 그냥 측은한 마음, 자비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교황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가 이야기하듯, 바로 이 자비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행동하는 것을 우리는 성덕이라고 부르지요. (GL#82) 의무감으로 일을 완수하거나, 잘못한 이를 단죄할 때가 아니라, 자비로운 마음에 이끌려 말하고 행동할 때, 하느님의 완전하심을 조금이나마 우리 삶에서 재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과연,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말씀하시듯, 자비는 정의의 완성이며, 자비는 하느님의 진리를 가장 찬란하게 보여줍니다. (GL#105)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님의 성심은 이 자비의 원천입니다. 그리고 마치 우리 몸의 심장 박동이 핏줄을 통해 맥박으로 전해지듯, 예수 성심으로부터 전해지는 사랑과 자비의 박동은 우리를 통해 세상 구석구석으로 전해지지요. 그래서 우리의 맥박을 보면서 사람들은 예수 성심의 박동을 느낍니다. 우리의 애덕을 통해서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아 헤맨 목자의 마음을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오늘은 사제성화의 날이기도 하지요. 생각해보면 사제들은 예수 성심에 연결된 동맥 혈관이 아닐까 싶습니다.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자비의 은총을 지체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혈관이 막히지 않도록, 그래서 사제들이 깨끗하고도 충실한 은총의 통로가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에제34,11-16 / 로마5,5ㄴ-11 / 루카15,3-7>
아흔아홉 마리를 놓아둔 채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나서는 목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어렸을 때 오늘 복음 말씀을 들으면서 떠올렸던 목자의 마음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한 마리도 잃지 않고 주어진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는 책임감, 광야에 남겨지는 아흔아홉 마리 양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 그런가 하면 잘 따라오지 않고 아마도 딴전을 피웠을 그 한 마리에 대한 원망의 마음도 떠올렸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나이가 들고 다양한 사랑의 역동을 체험하면서 떠올리게 되는 목자의 마음은 이전과 많이 다릅니다. 사랑하면 바보같이 눈이 멀어 그 대상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처럼, 그렇게 잃어버린 한 마리 양으로 가득 차 있을 목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된 때문이지요. 사라진 한 마리 양이 병이 들어 뒤처지지는 않았을까, 찔레 가시에 흰 털가죽이 찢겼거나, 가시덤불에 걸려 옴짝달싹 못 하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사나운 맹수에 둘러싸여 두려움에 떨고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목자는 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마음 안에는 숫자를 채워야 한다는 책임이나 의무감, 혹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그 양에 대한 원망이 들어설 자리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지요.
양을 찾아 떠나는 목자의 마음이 그런 것 같습니다. 책임감이나 의무감이 아니라, 또 잘잘못을 따지려는 마음이 아니라, 그냥 측은한 마음, 자비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교황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가 이야기하듯, 바로 이 자비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행동하는 것을 우리는 성덕이라고 부르지요. (GL#82) 의무감으로 일을 완수하거나, 잘못한 이를 단죄할 때가 아니라, 자비로운 마음에 이끌려 말하고 행동할 때, 하느님의 완전하심을 조금이나마 우리 삶에서 재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과연,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말씀하시듯, 자비는 정의의 완성이며, 자비는 하느님의 진리를 가장 찬란하게 보여줍니다. (GL#105)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님의 성심은 이 자비의 원천입니다. 그리고 마치 우리 몸의 심장 박동이 핏줄을 통해 맥박으로 전해지듯, 예수 성심으로부터 전해지는 사랑과 자비의 박동은 우리를 통해 세상 구석구석으로 전해지지요. 그래서 우리의 맥박을 보면서 사람들은 예수 성심의 박동을 느낍니다. 우리의 애덕을 통해서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아 헤맨 목자의 마음을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오늘은 사제성화의 날이기도 하지요. 생각해보면 사제들은 예수 성심에 연결된 동맥 혈관이 아닐까 싶습니다.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자비의 은총을 지체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혈관이 막히지 않도록, 그래서 사제들이 깨끗하고도 충실한 은총의 통로가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