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주님 만찬 성목요일

20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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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12,1-8.11-14 / 1코린11,23-26 / 요한13,1-15>


요즘은 아침마다 전 세계 뉴스를 보게 됩니다. 가까운 수도회 형제들이나 친구들이 살고 있는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인도 등을 비롯해서 그밖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는 나라들의 상황을 마음 졸이면서 찾아봅니다. 평소에는 잘 떠올리지도 않던 나라들인데, 지금의 사태가 시작되고서는 이렇게 날마다 걱정하고 그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확진자가 급증하던 시기에 대구와 경북 지역을 날마다 걱정스럽게 바라보았고, 또 어딘가에서 집단감염이라도 발생하면, 그 뉴스를 찾아보면서 그곳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또 어떻게든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인지 출입국 제한, 사회적 거리두기, 또 미사 중단 등으로 물리적으로 소통과 친교가 제한된 이때, 오히려 우리가 영적으로 더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깨닫는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성삼일의 시작이자 최후의 만찬을 통해 성찬례가 제정된 성목요일입니다. 성찬례는 우리 주님께서 당신을 배신할 그 사람마저 초대하셨던 사랑의 자리, 또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기까지 제자들과 한 몸으로 결합되기를 바라셨던 친교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가톨릭 신자 대부분이 오늘 미사에, 그러니까 성찬례가 제정된 주님 만찬 미사에 온전히 참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랑과 친교의 나눔으로부터 물리적으로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지요. 이 상황이 안타깝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올해 성목요일은 온 교회의 영적 결합을 더 깊이 체험하는 특별한 시간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물리적으로 함께 하지 못하기에, 오히려 온 교회를 그리워하는 이 시간이 우리를 더 하나로 모으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올해는 성삼일의 중요한 요소들이 많이 생략될 예정이기도 하지요. 예컨대, 오늘 미사를 거행한다고 하더라도, 주님 만찬 미사의 중요한 요소인 발 씻김 예식 등은 대부분 생략될 것입니다. 매년 교황님께서 어느 곳을 방문해 발 씻김 예식을 하셨는지가 이목을 집중시키는 뉴스가 되곤 했는데, 올해는 그런 뉴스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그러한 요소들이 사라진 올해 성삼일 전례는 마치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빈자리가 많아 보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 빈자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이웃의 발을 씻어주고 섬기라는 특별한 울림으로 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비어 있는 그 자리를 형제자매들과의 사랑과 친교로 우리가 채울 수 있다면, 그 자리는 공허함이 아닌 부활을 증거하고 만나는 빈 무덤이 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올해 성삼일과 부활은 우리 그리스도인들 모두에게 전에 없던 큰 도전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전례 안에서 성사적으로 깊이 만났던 부활의 신비를, 이제 우리 삶에서 더 많이 찾고 증거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또,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오히려 더 넓은 마음으로 온 세상과 연대하는 영적 친교를 나누고, 특별히 오늘 성 목요일에는 성찬례의 참 의미, 곧 사랑과 친교의 나눔을 내 삶의 자리에서 재현하기로 다짐해야 할테니 말입니다.


음식을 먹지 않는 단식이 단지 희생을 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고 하지요. 오히려 단식은 작은 죽음을 체험함으로써 나에게 참 생명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줍니다. 또 목적지를 잃어버린 듯 방황하는 광야체험은, 궁극적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알게 해줍니다. 마찬가지로 많은 것들이 제한된 지금의 이 가난 체험은, 오직 사랑과 친교의 나눔만이 우리를 참으로 풍요롭게 해줄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한자리에 모으시어 식탁의 친교를 나누신 오늘, 이 자리에 초대받았지만 함께하지 못하는 모든 이들과 영적으로 더 깊은 친교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가 얼마나 친밀하게 한 몸을 이루고 있는지 다시금 기억하자는 것이지요.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고유한 방법으로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섬김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면 좋겠습니다. 사실, 발 씻김 예식은 그 예식이 가리키는 섬김의 삶을 살 때 그 의미가 온전히 드러나는 법이니 말입니다.


전과 다른 낯선 성삼일을 보내면서, 이 시간이 우리에게 부활을 맞이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전례 안에서만 경축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넘어 참으로 우리 삶 가운데서 재현되어야 하는 것임을, 그렇게 주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부활하셔야 함을 우리가 깊이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과월절 만찬 때 그러하셨던 것처럼, 언제까지나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께, 이를 위해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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