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4,17(12).17(14)-17(16).17(23)-17(25) / 마태7,7-12>
지난 1월 19일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견된 지 40여일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어려움들을 겪고 있습니다. 외부행사를 줄이고 만남을 자제하면서 경기가 위축된 것은 물론이고, 연일 발표되는 확진자와 사망자 수자는 사람들의 마음마저 위축시키고 있지요. 또, 세계 곳곳의 관련 뉴스들과, 입국 제한 소식은 이런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국 가톨릭교회 236년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성당의 미사가 중단되는 상황이 너무도 당황스럽고, 매일 아침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모습은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대중교통을 타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고, 누가 기침이라도 하면 몸이 잔뜩 움츠러듭니다. 이렇게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의 자리에,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요즘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청하면 주시고, 찾으면 얻게 해 주실 것이며, 두드리면 열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청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고까지 약속하시지요. 감당하기조차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우리들에게 큰 위안이 되는 약속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그대로, 아니 그보다 더 좋은 결과까지도 주겠다고 하시니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끝까지 읽다보면, 이 말씀이 단지 위안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바라는 바를 얻게 되리라는 말씀 뒤에,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7,12)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오늘 말씀은 위안임과 동시에, 도전의 말씀이라고 묵상하게 됩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청하고, 찾고, 두드릴 때, 거기에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대구에서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병상이 부족하다는 소식에, 광주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그 환자들을 수용하겠다고 병원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습니다. 또, 마스크와 의료장비를 후원하는 손길이 계속되고, 일반 시민들도 “대구 힘내라!”를 외칩니다. 만일 내가 대구에 있었더라면 간절히 바랐을 바로 그 행동들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가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간절함에 기꺼이 응답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인지 여부를 떠나서,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우리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자랑스럽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우리들의 선한 마음을 확인하게 되는 이 순간이, 우리가 바라는 그 이상으로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하시듯, 우리도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서로의 간절한 마음에 더욱 귀 기울이고 응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안에서 기적같이 맺혀지는 열매들을 놀랍게 바라보며 감사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멘.
<에스4,17(12).17(14)-17(16).17(23)-17(25) / 마태7,7-12>
지난 1월 19일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견된 지 40여일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어려움들을 겪고 있습니다. 외부행사를 줄이고 만남을 자제하면서 경기가 위축된 것은 물론이고, 연일 발표되는 확진자와 사망자 수자는 사람들의 마음마저 위축시키고 있지요. 또, 세계 곳곳의 관련 뉴스들과, 입국 제한 소식은 이런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국 가톨릭교회 236년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성당의 미사가 중단되는 상황이 너무도 당황스럽고, 매일 아침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모습은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대중교통을 타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고, 누가 기침이라도 하면 몸이 잔뜩 움츠러듭니다. 이렇게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의 자리에,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요즘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청하면 주시고, 찾으면 얻게 해 주실 것이며, 두드리면 열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청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고까지 약속하시지요. 감당하기조차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우리들에게 큰 위안이 되는 약속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그대로, 아니 그보다 더 좋은 결과까지도 주겠다고 하시니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끝까지 읽다보면, 이 말씀이 단지 위안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바라는 바를 얻게 되리라는 말씀 뒤에,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7,12)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오늘 말씀은 위안임과 동시에, 도전의 말씀이라고 묵상하게 됩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청하고, 찾고, 두드릴 때, 거기에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대구에서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병상이 부족하다는 소식에, 광주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그 환자들을 수용하겠다고 병원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습니다. 또, 마스크와 의료장비를 후원하는 손길이 계속되고, 일반 시민들도 “대구 힘내라!”를 외칩니다. 만일 내가 대구에 있었더라면 간절히 바랐을 바로 그 행동들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가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간절함에 기꺼이 응답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인지 여부를 떠나서,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우리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자랑스럽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우리들의 선한 마음을 확인하게 되는 이 순간이, 우리가 바라는 그 이상으로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하시듯, 우리도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서로의 간절한 마음에 더욱 귀 기울이고 응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안에서 기적같이 맺혀지는 열매들을 놀랍게 바라보며 감사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