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연중 제7주일

2020-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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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19,1-2.17-18 / 1코린3,16-23 / 마태5,38-48>


수련기를 보내면서 수박을 키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키워 본 수박에 온갖 애정을 쏟아 부으면서 애지중지 키웠지요. 그런데 다 키우고 나서 보니 수박 크기가 사과만 한 겁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수박은 박에 접붙이기를 해야 제 크기가 나온다고 하더군요. 뒤늦게 알아보니, 이미 접붙이기를 한 모종을 팔기도 한다는데, 아마 제가 샀던 것은 그런 모종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애정을 쏟은 덕분인지 그 맛은 참 좋았는데, 그렇게 사과만한 수박 크기가 무척이나 아쉬웠던 기억이 납니다.


접붙이기의 기본 원리는 간단합니다. 원래 나무를 잘라낸 자리에 접붙이고 싶은 가지를 꼭 붙여 놓는 것이지요. 그러면 그렇게 서로 맞닿은 부분을 통해서 나무의 양분이 가지에 전해지고, 마침내 그 가지의 성질이 변화됩니다. 그러면 사과만 한 크기밖에 되지 않았던 수박이 농구공만 한 크기가 되듯이, 전에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큰 열매가 맺힐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형제자매나 친구조차 사랑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원수를 사랑하라는 이 말씀은 엄청난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순교하던 순간의 스테파노처럼,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님처럼, 나도 원수를 사랑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늘의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게 되기도 하지요.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으니, 원수도 사랑하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솔직히 자신도 없고, 잘 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원수를 사랑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랑하기 싫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남을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도 다 있지요. 그분 모상대로 창조된 우리이기에, 이런 선한 마음이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겠지요. 내 안에 분명 사랑은 있는데, 그 사랑이 원수를 사랑할 만큼 그렇게 크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수박을 접붙여서 크게 만들 듯, 우리 마음속 사랑의 열매도 접붙이기를 통해 크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더 좋은 품종을 만들기 위해서, 혹은 그 크기를 키우기 위해서 접붙이기를 하는 것처럼, 우리 마음도 하느님의 마음에 맞닿아 우리 안의 선한 지향이 큰 열매로 맺히게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표현을 빌자면, 하느님의 은총은 인간 본성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완성시킨다고 합니다. 본래부터 우리 마음속에 있던 거룩해지고 싶고, 주님을 닮고 싶은 바람이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이지요. 달리 말하면, 하느님 은총에 우리 지향을 접붙여서 양분을 전해 받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품성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전에는 불가능해 보이기만 했던 큰 사랑의 열매가 우리 안에도 맺힐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 기도와 미사가 바로 이러한 접붙이기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이러한 만남을 통해서 우리 마음속의 선한 지향을 다시 확인하고, 그에 필요한 은총과 복을 양분으로 전해 받으니 말이지요. 만일 이러한 시간이 없다면, 아무리 선한 지향이 있다 하더라도 그 열매를 맺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은 나뭇가지처럼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사실, 우리는 그분 없이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요한15,5)


오늘 제1독서와 복음이 우리에게 하는 요청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함으로써 거룩한 사람, 완전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이 모든 것을 내 힘과 의지로 하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선한 지향을 주님께 말씀드리고, 그에 필요한 은총을 겸손하게 청해 받으라는 초대인 것이지요. 우리의 선한 지향이 하느님의 은총과 맞닿도록 말입니다. 그때 비로소,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이야기하듯, 우리는 참으로 하느님의 성전이 되고,(1코린3,17) 그리스도의 소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1코린3,23)


그런 의미에서 오늘 독서와 복음은 큰 도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큰 희망의 말씀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우리의 바람과 하느님의 초대가 다르지 않고, 그분께서 기꺼이 필요한 은총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으로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오늘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아직 완성되지 않아 작게만 보이는 나의 부족함을 보기보다, 주님 안에서 크게 완성될 열매를 희망 안에서 기쁘게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희망과 기쁨의 마음으로 주님 안에 머무는 가운데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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