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 투르의 성 마르티노 기념일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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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1,1-7 / 루카17,1-6>


오늘 방에서 성당까지 몇 걸음을 걸어오셨는지 기억하는 분 계신가요? 세는 분도 없겠지만, 설사 세었다 하더라도 매일매일 걷는 발자국 수를 기억할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걷는 것은 어떤 특별한 행동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기에, 굳이 그것을 기억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물론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아이라면 그 한 걸음 한 걸음을 특별하게 보고 기억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커서 걸음마를 다 배우고 아무렇지 않게 걷기 시작하면 더는 그 발자국 수를 세지 않을 것입니다. 당연한 습관처럼 일상이 되어버린 것을 굳이 횟수까지 세면서 기억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루카17,4)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하기도 어려운 용서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해주라는 예수님 말씀이 너무 지나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사실, 당시 유대교의 교사들은 사람들에게 세 번까지 용서하라고 가르쳤다고 하는데, 그와 비교하더라도 예수님의 기준은 정말 높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더욱이 하루에 일곱 번이나 잘못할 정도면, 이건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나를 해코지하려는 의도가 의심될 정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때마다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정작 일곱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오늘 복음 말씀은 마치 걸음을 걷듯, 눈을 깜박이듯, 그렇게 당연한 일상처럼 용서를 생활화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시 말해서, 용서는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라기보다, 내 몸에 익혀진 자연스러운 습관처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지요. 모든 습관의 시작이 다 그렇겠지만, 아마도 용서의 습관 역시 처음에는 횟수를 셀만큼 특별한 순간들로 기억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거듭하면서 습관이 되고, 또 내 삶의 일부가 되면, 그때는 굳이 횟수를 셀 필요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때는 하루에 일곱 번이든 일흔 번이든 이제 일상이 된 용서를 삶으로 살면 될 뿐입니다.


우리들의 수도 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몸에 맞지 않는 옷 같았지만, 자꾸 되풀이하고 익숙해지다 보니 어느새 삶이 되었습니다. 나 자신은 인식하지 못할 만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생각과 행동인데, 사람들은 거기서 무언가 다른 향기를 감지하곤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성소가 완성되어 가는 것이겠지요. 그렇듯 우리의 정체성에 맞는 모습들이, 우리의 삶으로 젖어들 수 있기를, 그래서 자연스레 복음의 향기를 세상에 전할 수 있도록, 이 시간 필요한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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