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38,1-6.21-22.7-8 / 마태12,1-8>
고해성사를 드리다 보면 주일미사 참례를 못했다는 고백을 많이 듣게 됩니다. 사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신자들의 의무이고, 또 주일을 가장 거룩하게 보내는 방법이 미사 참례인 만큼, 십계명 가운데 제3계명을 지킨다는 차원에서도 주일미사를 강조하는 것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주일미사에 빠진 것 자체가 죄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관면을 받은 경우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겠지만, 그 밖에도 환자를 돌보거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것처럼 사랑 실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미사 참례를 못하는 경우는 죄가 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랑에 앞서는 어떠한 계명도 있을 수 없고, 사실 모든 계명의 정신은 사랑의 실천이기 때문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비난하는 바리사이들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통해 그것이 죄가 되지 않음을 설명해주십니다. 그 첫 번째는 안식일에 다윗과 그 일행이 하느님의 집에 있는 제사 빵을 먹은 이야기였지요. 본래 제사빵은 주님께 바쳐진 것으로서 사제들 이외에는 먹을 수 없는 음식입니다. 하지만 아히멜렉 사제는 굶주린 다윗 일행에게 기꺼이 빵을 내어줍니다. 이는 제사에 대한 규정보다, 배고픈 이웃에게 먹을 것을 주는 자비가 더 중요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성전에서 사제들이 안식일을 어기는 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아무리 안식일이라 하더라도 성전 안에서는 예외적인 적용이 가능했다는 것이지요. 한편, 이 말씀은 단순히 예외법에 대한 설명을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큰 도전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과연 성전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서, 성전에 가야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하느님께서 계신 곳이 성전이 되는 것인지 근본적으로 성찰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전례가 이루어지고, 성체가 모셔진 성전은 분명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곳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당신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있겠다(마태18,20)고 하신 분께서는 기도하는 이들 가운데도 현존하십니다. 또, 가장 작은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신(마태25,40) 그분께서는 가난한 이들 가운데 살아 계십니다. 그렇게 "성전보다 더 큰 분"(마태12,6)께서 복음에 등장하는 안식일의 밀밭은 물론, 세상 곳곳을 거룩한 장소로 만들고 계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분께서는 각각의 그 장소들이 어떤 계명보다도 당신의 사랑과 자비로 충만해지기를 바라십니다.
일찍이 사막의 교부들은 '하느님이 계신 곳을 찾지 말고, 하느님을 찾으라'고 충고하셨다고 하지요. 만일 이 충고를 마음으로 깊이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 안식일의 밀밭을 세상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가운데서, 또 자비의 마음이 드러나는 곳에서 우리는 그렇게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하느님의 성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매 순간 그러한 성전을 알아보고 거기에 투신할 수 있도록, 이 시간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이사38,1-6.21-22.7-8 / 마태12,1-8>
고해성사를 드리다 보면 주일미사 참례를 못했다는 고백을 많이 듣게 됩니다. 사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신자들의 의무이고, 또 주일을 가장 거룩하게 보내는 방법이 미사 참례인 만큼, 십계명 가운데 제3계명을 지킨다는 차원에서도 주일미사를 강조하는 것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주일미사에 빠진 것 자체가 죄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관면을 받은 경우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겠지만, 그 밖에도 환자를 돌보거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것처럼 사랑 실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미사 참례를 못하는 경우는 죄가 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랑에 앞서는 어떠한 계명도 있을 수 없고, 사실 모든 계명의 정신은 사랑의 실천이기 때문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비난하는 바리사이들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통해 그것이 죄가 되지 않음을 설명해주십니다. 그 첫 번째는 안식일에 다윗과 그 일행이 하느님의 집에 있는 제사 빵을 먹은 이야기였지요. 본래 제사빵은 주님께 바쳐진 것으로서 사제들 이외에는 먹을 수 없는 음식입니다. 하지만 아히멜렉 사제는 굶주린 다윗 일행에게 기꺼이 빵을 내어줍니다. 이는 제사에 대한 규정보다, 배고픈 이웃에게 먹을 것을 주는 자비가 더 중요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성전에서 사제들이 안식일을 어기는 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아무리 안식일이라 하더라도 성전 안에서는 예외적인 적용이 가능했다는 것이지요. 한편, 이 말씀은 단순히 예외법에 대한 설명을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큰 도전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과연 성전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서, 성전에 가야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하느님께서 계신 곳이 성전이 되는 것인지 근본적으로 성찰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전례가 이루어지고, 성체가 모셔진 성전은 분명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곳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당신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있겠다(마태18,20)고 하신 분께서는 기도하는 이들 가운데도 현존하십니다. 또, 가장 작은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신(마태25,40) 그분께서는 가난한 이들 가운데 살아 계십니다. 그렇게 "성전보다 더 큰 분"(마태12,6)께서 복음에 등장하는 안식일의 밀밭은 물론, 세상 곳곳을 거룩한 장소로 만들고 계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분께서는 각각의 그 장소들이 어떤 계명보다도 당신의 사랑과 자비로 충만해지기를 바라십니다.
일찍이 사막의 교부들은 '하느님이 계신 곳을 찾지 말고, 하느님을 찾으라'고 충고하셨다고 하지요. 만일 이 충고를 마음으로 깊이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 안식일의 밀밭을 세상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가운데서, 또 자비의 마음이 드러나는 곳에서 우리는 그렇게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하느님의 성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매 순간 그러한 성전을 알아보고 거기에 투신할 수 있도록, 이 시간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