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1] 연중 제12주일

2020-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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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례20,10-13 / 로마5,12-15 / 마태10,26-33>


막강한 권력 앞에서 감히 입바른 소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보더라도 많은 이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고 숨죽이며 지냈던 아픈 시간이 있었지요. 그런가 하면, 회사의 부당한 횡포에 맞서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타협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종종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약자의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은, 두려웠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권력에 의해 자기 자신이나, 아니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희생되고, 소외되고, 버림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는 것이지요. 그 두려움에 공감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두렵지 않을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누가 정말 더 두려웠던 것인지는 의문이 남습니다.


속담 가운데,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이 있지요. 잘못이 있는 사람이 자기 잘못이 드러날까 두려워, 그것을 가리려고 오히려 화를 낸다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당하게 권력을 휘두르고, 상대를 내리누르는 사람들 안에는 큰 두려움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본능적으로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이 옳지 않음을 알기에, 행여 그것이 드러날까 두려워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악행을 감추기 위해서 물리적으로나 언어로 상대에게 폭력을 휘두릅니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꼬리를 내리고 뒷걸음치며 사납게 짖는 강아지를 보는 것 같아서, 때로는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 등장하는 예레미야 예언자는 남유다 왕국의 부패를 경고하며, 유다에 불행이 닥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예언에 귀를 기울여 회개하기보다, 자기들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그 말이 몹시 거슬렸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마치 겁쟁이 강아지처럼 예레미야를 몰아붙이기 시작합니다. 독서에 나오는 ‘마고르 미싸빕’이라는 말은 사면초가에 처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온 유다 백성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 바른말을 하는 예언자 한 명을 궁지에 몰아넣고, 어떻게든 자신들의 악행이 드러나는 것을 막았다는 것이지요.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의문을 가져봅니다. 사면초가에 빠진 예레미야 예언자와 그 예언자를 폭행하는 유다 백성들 가운데,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이 질문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그러니까 두려움의 대상이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과 맞닿아 있습니다. 사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그 대상이 다를 뿐이지요. 어떤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이 두려운가 하면, 어떤 사람은 건강이나 현세의 영예를 잃어버리는 것이 두려울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의로움의 길에서 벗어나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무엇을 두려워하느냐에 따라 우리 행동은 달라지게 마련이고, 똑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두렵지만, 다른 누군가는 전혀 두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복음 말씀을 올바로 알아들을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육신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10,26-33) 두려움이라는 감정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피조물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모든 것을 창조하고 주관하시는 하느님을 경외(敬畏)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실, 피조물에 대한 두려움은 언제나 사람들을 위축시키지만,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은 신중함과 용기를 갖게 해줍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뜻을 따르기 위해서 신중하게 말하고 행동하며, 또 예레미야 예언자와 같이 어떤 박해나 억압 가운데서도 담대해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올바른 방법으로 용감하게 그분을 증언할 수 있게 됩니다. 과연 집회서 저자가 이야기하듯, 주님을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시작(집회1,14)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외 없이 많은 두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두렵고, 서로 간에 상처를 주고받는 것도 두렵고,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건강을 잃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 두려움들이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이나 상황이 아닌, 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상황을 섭리로 주관하시는 분께 향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느님께 대한 경외로부터 얻어진 지혜를 가지고 우리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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