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신앙이라고 말하는 라틴어 “Credere” 라는 말은 본래
‘자신의 마음을 준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때로 선하게 때로는 악하게,
때로는 깊은 신심으로 때론 부족한 신심으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런 부침이 반복되는 생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마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 외아들을 내주셨기에”(3,15)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건네주신 무상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마음을 내어주신 하느님을 다시 보며
우리의 마음을 내어주는 것이 우리의 신앙을 보여주는 것이겠죠.
죄는 분명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의 영혼을 물어 상처 나게 하고 갈등하게 하고,
서로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마침내는 서로를 죽이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찢진 영혼, 죽을 영혼이라도 교회의 십자가를 다시 바라보며 주님께
“마음을 내어 준다”면 그분은 다시 그를 위해 당신의 피를 흘려서라도 살리고 품어주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언제나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과 은총뿐만 아니라 당신 전체를 다 주십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바로 인간의 행복이고, 그것을 아는 것이 신앙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마음을 다 내어주시는 당신의 사랑 고백에 잠겨 감사드릴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이라고 말하는 라틴어 “Credere” 라는 말은 본래
‘자신의 마음을 준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때로 선하게 때로는 악하게,
때로는 깊은 신심으로 때론 부족한 신심으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런 부침이 반복되는 생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마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 외아들을 내주셨기에”(3,15)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건네주신 무상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마음을 내어주신 하느님을 다시 보며
우리의 마음을 내어주는 것이 우리의 신앙을 보여주는 것이겠죠.
죄는 분명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의 영혼을 물어 상처 나게 하고 갈등하게 하고,
서로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마침내는 서로를 죽이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찢진 영혼, 죽을 영혼이라도 교회의 십자가를 다시 바라보며 주님께
“마음을 내어 준다”면 그분은 다시 그를 위해 당신의 피를 흘려서라도 살리고 품어주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언제나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과 은총뿐만 아니라 당신 전체를 다 주십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바로 인간의 행복이고, 그것을 아는 것이 신앙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마음을 다 내어주시는 당신의 사랑 고백에 잠겨 감사드릴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