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 6,37과 38은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가르침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 교사들이 먼저 사람들에게 교훈적인 가르침을 주고,
뒤이어 이 가르침을 따를 때
하느님으로부터 받게 될 은총에 대해서 말하는 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의 기본적인 생각은 신앙인의 행위와
그들의 행위에 따른 하느님의 행위에 대한 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분명 다른 사람의 잘못을 인지하지 말라고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과 인지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매일 수많은 것을 보게 되고,
본 것에 대해서 어떤 것이 옳은 것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어떤 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고,
어떤 것이 세상적인 것으로 자신을 유혹하는 것인지 구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것이 하느님적인 것이고,
어떤 것이 하느님적인 것이 아닌지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식별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자신이 하느님적인 것에 대해 식별한 것을
다른 사람들의 옳지 못한 행위에 대해 사랑으로 충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도 아니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판단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자신이 보고 인식하지 않으면 구분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보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말고, 판단하지도 말라고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용서를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용서가 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고 용서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심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느님뿐입니다.
심판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죠.
주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알고 인지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판단하고 매번 비난합니다.
그리고 매번 서로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 생활을 위해
하나의 원칙을 우리에게 제시해 줍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을 보고 듣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우리가 하느님의 눈으로 그것을 먼저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면 보고 배우고,
하느님 보시기에 좋지 않았다면 사랑으로 충고하고 품어 주는 것이죠.
그러기에 우리에게 늘 첫 번째 질문은
“하느님 보시기에 어떤가?”가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우리에게 주신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보시니 좋았다는 하느님의 마음으로
신앙인들 역시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물으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루가 6,37과 38은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가르침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 교사들이 먼저 사람들에게 교훈적인 가르침을 주고,
뒤이어 이 가르침을 따를 때
하느님으로부터 받게 될 은총에 대해서 말하는 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의 기본적인 생각은 신앙인의 행위와
그들의 행위에 따른 하느님의 행위에 대한 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분명 다른 사람의 잘못을 인지하지 말라고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과 인지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매일 수많은 것을 보게 되고,
본 것에 대해서 어떤 것이 옳은 것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어떤 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고,
어떤 것이 세상적인 것으로 자신을 유혹하는 것인지 구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것이 하느님적인 것이고,
어떤 것이 하느님적인 것이 아닌지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식별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자신이 하느님적인 것에 대해 식별한 것을
다른 사람들의 옳지 못한 행위에 대해 사랑으로 충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도 아니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판단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자신이 보고 인식하지 않으면 구분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보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말고, 판단하지도 말라고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용서를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용서가 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고 용서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심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느님뿐입니다.
심판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죠.
주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알고 인지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판단하고 매번 비난합니다.
그리고 매번 서로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 생활을 위해
하나의 원칙을 우리에게 제시해 줍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을 보고 듣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우리가 하느님의 눈으로 그것을 먼저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면 보고 배우고,
하느님 보시기에 좋지 않았다면 사랑으로 충고하고 품어 주는 것이죠.
그러기에 우리에게 늘 첫 번째 질문은
“하느님 보시기에 어떤가?”가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우리에게 주신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보시니 좋았다는 하느님의 마음으로
신앙인들 역시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물으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